[금리자유화시대] (5.끝) 고민하는 영업점장

"하나은행등 신설은행에선 1년만 맡겨도 연15%의 이자를 준다고 합니다.단골 고객들이 그쪽으로 빠져나가는데 우리는 어디 그만큼의 이자를 줄수 있어야 말이죠. 이래가지곤 어찌 장사를 해먹겠습니까" 제3단계 금리자유화가 발표된 지난 21일 축협의 한지점장은 전화를 걸어 이렇게 하소연해왔다. 그리고는 가뜩이나 힘든 판국인데 단기수신금리마저 자유화돼 더 어려워질 것이란 말을 덧붙였다. 요즘 은행지점장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금리가 자유화되다보니 예금끌어들이기가 예전같지 않아졌다. 고객들은 "다른 은행은 OO%준다는데 왜 못주느냐"고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내가 2천만원을 맡기려는데 얼마의 이자를 줄수 있느냐"고 대놓고 "네고"를 해오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무작정 높은 금리를 덜컥 적용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점에선 가능한한 비용을 적게 들이고 예금을 유치하라고 난리다. 행여 높은 금리를 주고 예금을 가져오면 본점에선 "당신이 운용하면 그만한 이익을 낼수 있느냐"고 닥달이다. 실제 대부분 은행들은 지점업적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예금고"보다는 "수익성"을 잡고 있다. 아무리 많은 예금을 끌어와도 이익을 내지 못하면 다음 인사에서 좌천되고 많다. 여기에 금리자유화시대를 살아가는 은행지점장들의 고민이 있다. 고객은 높은 금리를 주지않으면 예금을 맡기지 않겠다고하고 본점에선 낮은 금리의 예금을 많이 유치하라고 난리고. 물론 전에도 이런류의 고민이 없었던건 아니다. 문제는 이번 자유화조치로 고민의 정도가 더 커졌다는데 있다. 먼저 까다로와진 고객들의 요구를 보자. "지난 25일 단골 거래고객이 찾아왔었죠. 적금탄게 5천만원정도 있는데 연말까지만 운영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연8%인 6개월짜리 정기예금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객은 양도성예금증서(CD)가 나을것 같다며 금리를 얼마나 주겠느냐고 해요. 본점과 상의한 결과 60일짜리면 연11%를 줄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정도로는 안되겠다고 말합디다" 대형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이 최근 체감한 금리자유화이후 변화된 모습이다. 후발은행들은 경쟁적으로 60일미만 CD를 최고 연15.0%까지 줄수 있다고 나서고 있다. 선발은행들로선 꿈만 같은 얘기다. 물론 지점장이 융통성을 발휘할수 있는 폭이 없는건 아니다. 그러나 그 폭은 불과 0.5%포인트 정도로 한정돼 있다. 그 이상을 초과하려면 반드시 본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저 발로만 열심히 뛰면 됐던 얼마전에 비해선 예금끌어들이기가 그만큼 힘들어진 것이다. 거기다가 본점의 요구도 고객못지않게 까다로와 졌다. 무조건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이익을" 강조한다. 본점에 떼를 써서 고금리인 연13%로 예금을 끌어들였다고 치자.이를 자체적으로 운용하자니 수단이라고해야 대출밖에 없다. 대형시중은행의 경우 비용을 뺀 대출이자는 연12%를 약간 넘는다. 역마진이 발생하고 수익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 그러니 고수익상품에 운용해달라고 본점에 의뢰할수밖에 없다. 이때도 본점이 거저 운용해주는건 아니다. 지점별 독립채산제이다보니 본점에 예금하는 형식을 취한다. 연11~13%대인 본.지점간 이자율이 엄격히 적용된다. 잘해야 본전이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영업점장의 최대 덕목은 "예금끌어오기"였다. 출처를 불문하고 조달비용을 따지지 않고 수신고만 많으면 그는 으뜸 은행원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런 관행은 남아있다. 예나 지금이나 예금고가 많으면 대우받는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엔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얼마나 비용을 적게 들이느냐가 그것이다. 은행들은 전국 영업점을 비슷한 규모끼리 20여개그룹으로 분류,실적을 평가한다. 평가항목중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이 이익을 얼마나 내느냐다. 제일은행의 경우 2천점만점인 영업점종합평점에서 이익관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1천점이나 된다. 예금이나 외환등 각종 실적은 4백20점에 불과하다. 금리자유화는 은행의 꽃이라는 영업점장들의 영업패턴에 변화를 몰고오고 있다. 예전같이 막무가내식 예금끌어오기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고객과 본점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할수 있는 점포장만이 살아남는다. 그런 점포장이 많을수록 금리자유화시대를 살아가는 은행의 경쟁력이 강화되는건 물론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