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142) 제6부 진가경도 죽고 임여해도 죽고 (4)

진가격은 잠시 희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가문이 잘 사는 동안 그냥 허랑방탕하게 보내지 말고 선조들의 산소 주위의 땅들을 많이 사두는 것입니다. 거기다 가옥도 짓고 장원도 꾸며 수익이 생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수입으로 제사비용과 학숙 유지비를 충당하도록 하면 다른 돈을 끌어다 쓸 필요없이 대대로 조상 제사와 자손 교육이 이어져 갈 것입니다. 학숙도 지금 있는 학숙 대신 그 땅에다 새로 세우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현재 있는 돈만 쓰려고 할것이 아니라 수익사업을 통하여 자금을 비축해나가야 한다는 진가경의 제안은 무릎을 칠만한 고견이라 아니할수 없었다. 희봉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살아있는 진가경을 대하듯 궁금한 점들을 질문하였다. "그럼 그 수익이라는것은 집세와 소작료 같은 것일텐데 그것들을 누가 관리하지요? 수익이 있으니까 서로 자기네가 관리하겠다고 나서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가문 회의를 열어 해마다 돌아가면서 맡도록 하면 되지요. 그러면 집안끼리 옥신각신 싸우는 일도 없겠지요. 그때 좀 가난한 집안은 제사비용과 학숙 유지비 기타 관리비를 제외한 나머지 수익으로 자기들 살림에 보탤수도 있고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가문에서 누가 나라에 죄를 지어 가산이 모두 몰수당하게 되는 사태가 생겨도 안전하지요" "그런 때도 안전하다니요? 학숙이고 뭐고 다 빼앗기는 거 아니에요?" "아니죠. 비록 역적의 재산이라 하더라도 선사에 딸린 땅은 국법으로도건드릴수가 없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학숙도 조상의 산소 주위에 짓자고 하는 거요" 하, 여기까지 생각이 돌아가다니 희봉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수 없었다. 나라에 정변이 일어나거나 하여 본의 아니게 가문 전체가 나라에 죄를 짓고 기울게 되는 사태까지 상정하고 대비하고 있는 진가경이 아닌가. 희봉이 말문이 막혀 진가겨의 모습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진가격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가문이 기울어 가속들이 일시적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에도 선산 주위의 땅들만 잘 관리되고 있으면, 언젠가는 자손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학숙에서 공부도 하고 농사도 지으며 발을 붙이고 살수가 있게 되겠고 조상 제사도 끊어지지 않게 되겠지요" 진가경은 자기가 세상을 떠나간 후의 가문의 미래를 예측하는듯 두눈에눈물이 흥건히 고여 들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