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연간 사채규모 34조...통계적 의미 왜곡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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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우리나라의 연간 사채이용규모가 34조원에 달한다는 대금업공청회에서의 발표가 각 신문에 대서특필됨으로써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이 이 통계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필자는 약간의 설명을 붙이고자 한다. 먼저 사채이용규모를 정확히 산출한다는 것은 1972년의 8.3조치와 같이 차입자들에게 신고유인이 부여된 강제적인 방법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공급자나 이용자 공히 사채거래 사실 자체를 밝히기를 지극히 꺼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표본조사를 통해 일단의 통계를 생산하고 여기에 몇가지 가정을 이용하여 전체 모집단의 수치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이번 대금업관련 공청회에서 발표된 통계도 한국금융연구원의 의뢰에 의하여 한국갤럽이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표본조사한 결과로 나타난 결과를 사금융연구회에서 몇가지 가정을 통하여 전국의 이용규모로 추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추정상의 여러가지 제약들을 고려하지 않고 사채이용규모 34조원 또는 GNP의 11.2%라는 숫자만 강조될 경우,독자들로 하여금 통계의 마술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다. 일반독자들이 이 통계를 이해하는데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된다. 첫째로 뉴스의 가치로 보도내용이 선택됨으로써 자료의 경제학적인 타당성이나 본질적 의미보다는 독자들에게 전해지지 못한감이 있다. 공청회에서 배포된 자료는 사금융규모에 대하여 두가지 통계를 발표하였다. 하나는 연간 이용규모인 34조원이며,다른 하나는 사채잔액 8조4,000억원(사채자금의 크기)이었다. 개념상으로 34조원은 1년간을 기준으로 하여 포착된 흐름의 수치이며,8조원은 조사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포착된 수치이다. 또한 8조4,000억원은 34조원을 사채자금의 거래회전율을 가정하여 이것으로 나누어서 산출한 것이다. 따라서 연간 거래규모 34조원은 동일한 잔액규모하에서도 추정된 거래회전율에 따라서는 실제의 거래규모를 과대추정한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과소추정한 것일수도 있다. 8조4,000억원은 거래이용규모를 다시 회전율로 나눈 것이므로 당초 표본조사에서 나타난 수치에 두가지 회전률이 작용하여 회전률의 불확실성 문제를 어느 정도 상쇄시켰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이용규모보다는 잔액규모가 사채시장을 반영한 통계로서 방법상의 신뢰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하겠다. 둘째로 우리가 사채시장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34조원이나 8조4,000억원이란 절대치보다는 이 수치의 시중유동성 규모에 대한 상대적인 크기와 과거에 대비한 상대적 크기의 변동이 훨씬 경제학적으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34조원은 GNP의 11.2%에 해당하나 GNP는 최종생산물의 부가가치를 집계한 것이므로 사채이용규모를 평가하는데는 이보다 연간 총지불규모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34조원은 1994년 어음교환총액 5,781조원의 0.58%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수치만으로도 사채이용규모가 커졌는지 또는 작아졌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추정된 사채잔액 8조4,000억원은 작년말 총통화잔액의 6.3%에 해당하고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었던 1993년7월 당시 시중에 유포되었던 사채규모 10조원의 총통화에 대한 비율 9.9%에 비해서는 상당히 감소한 것이다. 사채시장규모 추정이 시사하는 바는 추정상의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사채시장의 규모가 경제활동규모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4조원과 GNP 11.2%라는 숫자의 마술은 사채시장규모 추정이 시사하는 본질을 가리고 있다. 셋째로 사채라는 개념상의 혼동과 동시장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구조로 인하여 통계해석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갤럽은 응답자에게 전문사채업자로부터의 차입에 대하여 질문하였으나,친지간에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일이 흔한 사회관행으로 인하여 응답자들은 이자를 부담하고 돈을 빌린 것은 모두 사채로 인식하고 응답했을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즉 한국갤럽의 사채이용조사 결과의 통계적 표준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이나,이러한 표준오차는 지난번 지자제 선거때의 투표직후에 실시된 출구조사의 표준오차와는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속담에 "아"다르고,"어"다르다는 말이 있다. 동일한 현상도 어떤 측면에서 포착하고 설명하느냐에 따라 그 본질이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34조원이나 GNP의 11.2%라는 숫자가 감각적으로는 엄청나게 큰 숫자라는 점만으로 사채시장의 문제를 인식한다면,사채시장 조사결과는 국민들에게 왜곡되게 전해질 가능성이 있다. 사채시장의 규모가 종전보다 축소되었다고 해서 사채시장문제의 중요성이 저하되는 것은 아니다. 34조원이나 GNP 11.2%라는 통계의 마술로 인하여 사채시장 조사가 시사하는 바가 독자들에게 왜곡되게 전해져 사채시장의 문제가 본질과 다른 방향으로 오도되는 것은 사채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