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1일자) 선굵은 대북정책의 여망
입력
수정
지척의 북한땅에서,특히 김주석 사후 1년여간에는 과연 이 시대에 그런 일들이 일어날수 있을지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소사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 바깥 세상을 놀라게 해왔다. 공교로운 일은 상대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정부의 일련의 대북정책 또한 국민들의 적잖은 불안과 불평을 부른다는 사실이다. 성급하다,미온적이다는 상반된 비판에다 싸잡아 미숙하다는 불평마저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대북정책을 평가함에 있어 전제 또는 감안하지 않으면 안되는 몇가지 저변이 있다. 첫째는 상대가 워낙 예측불허의 사고집단이라는 사실로,1년 넘도록 국가 원수직을 비워둔 파격 하나로 입증되고도 남는다. 다음으론 통일을 바라보는 관점의 상이이다. 체제 불문한 통일우선의 급진론에서부터 한치라도 양보.타협하는 통일에 반대라는 여러 갈래로,국민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이 갈려 있다. 셋째 당국이나 국민이 평범한 상식을 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다. 상식선에서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면 근년 악화일로의 위기속에 북한 집권층이 취할 자구 몸부림의 절박성을 대북정책 당국은 염두에 두고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몇가지 점을 감안한다면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추진코자 하는 어떤 주제,어떤 수준의 대화나 접촉도 처음부터 수난을 예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 가운데도 북한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처한 위기를 파악,대안의 분석과 선택에 있어 일련의 시뮬레이션 비축이 가장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대북 쌀 지원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현안만 해도 전번 인공기 강제게양사건과 사진촬영을 빌미로 한 이번 선박억류 사건간의 연계를 당국은 이미 상정하고 세심하게 대비했어야 한다. 한국 경수로 수용을 끝내 수락하고 쌀 원조마저 감수해야 하는 북한당국의 처참한 심경에서 포착된 것이 삼선비너스호 선원의 사진촬영 현장이다. 항변에도 불구,공수전환의 대가를 충분히 얻고나서야 저들은 다음 행동에 옮길 것이다. 권력핵심의 생존을 위해서도 대남 공세전환은 그들에게 시급한 숙제였다. 돌이켜 보면 6공의 대북방 접근에서 내심 시한에 쫓겨 양보에 치우친 조급성을 노출했으며 현 정부도 "가장 소중한 것은 민족이상 없다"는 감상적 신호이후 양보로 일관해왔다 할수 있다. 2년여간 이미 일방적 선의나 양보의 대가가 북의 강경전환 빌미 제공이라는 교훈을 얻을대로 얻어 왔다. 그럼에도 대북정책의 기저는 전환의 기미가 없다. 더욱이 방미를 계기로 대통령의 괄목할 8.15 대북제의가 예고돼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아무 성과도 없는 대북 연속제의를 더이상 반기기 보다 "또 당하는구나" 걱정이 앞설만큼 총의가 따르지 않고 있다. 역대 대통령 치고 통일위업을 자청하지 않은이 없다. 그러나 내부적 성숙과 안정을 견고히 다지면서 후일을 준비하는 역사인식이야 말로 더욱 존경받을 인물됨의 덕목이라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