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시론] GNP와 국민품위..유동길 <숭실대 중기대학원장>

국민소득이 늘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해외여행도 늘어났다. 세계곳곳에서 한국여행객을 만나는건 예삿일일뿐아니라 유명관광지엔 한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우리의 국력이 강해져 나타나는 현상인지 모른다. 국력이 신장되면 국민의 품위도 함께 올라가는 것인가. 국민의 품위를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 개인의 품위나 교양수준은 그 사람의 소득수준에 일치하지 않는다. 돈벌이가 잘되고 사는 집을 잘 가꾸어 놓았다고 해서 품위나 교양은 비례해서 상승하지 않는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되어 우리는 전세계에 망신을 당했다. 누가 얼마의 돈을 감추어 놓았다는 헛소문으로 온나라가 떠들석했다. 국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데 기여한 사건이다. 우리가 해외여행에서 연출하는 온갖 잘못된 행태는 우리국민의 품위를 결정적으로 손상시키고 나라망신을 시킨다.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던 80년대후반에 취해진 해외여행자유화조치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해외여행객수는 90년의 156만명에서 94년에는 315만명, 올해엔 39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 7~8월만해도 해외여행을 했거나 떠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30% 늘어난 90만명이 될것이라고 한다. 해외여행으로 지급된 외환이 외국여행객으로 부터의 수입외환보다 많아진 것이 91년부터다. 91년부터 여행수지는 적자를 기록, 적자폭은 매년 커져 94년에는 12억달러에 이르렀다. 선진국에 나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후진국에 나가서도 많은 것을 느끼고와야 한다. 그것이 여행에서 얻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여행수지적자가 늘어나고 외환지급이 많아지는게 문제가 아니다. 해외여행지에 부각시키고 있는 추한모습이 진정 문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국내 관광지에서 자행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다간 한국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우리의 나쁜 문화가 자리잡히는게 아닐까하는 걱정도 앞선다. 한국인들만을 상대하는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또 한국인들만을 상대하는 상점에 들러 떼지어 물건사고 고추장 된장 가져다니면서 식사하고 떠들며 다닌다. 한국여행객의 모습만 보고도 "빨리빨리 쌉니다"라고 서툰 우리말을 하는 현지인들도 늘어난다. 외국에 나가서 우리보다 잘사는 모습을 배우고 그들의 삶의 방식과 좋은 문화를 배운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우리보다 잘산다고 해서 주눅들 이유는 없다. 우리보다 못산다고 해서 우쭐댈건 더욱 없다. 세계 어느곳을 가나 잘살고 못하는 차이는 있지만 모두 그들 나름대로 삶을 꾸려간다. 우리의 잣대로 그들의 삶을 측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일부 잘못된 여행모습이 혹시 중국 연변의 조선족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있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그들의 삶은 어떤 부문에서는 문명을 비껴간것 같기도 하지만 어려운 역사를 몸소 체험하며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오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백두산을 찾는 발길에도 문제는 많다. 민족의 영산이라면 그곳을 오르는 마음도 거기에 걸맞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잘못된 관광풍조와 돈벌이에 눈먼 중국의 상혼이 한데 어우러져 펼쳐지는 관광지의 북새통은 한국의 추한 모습을 각이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다. 민망한 일이다. 잘못된 천민자본주의 사상이 거기에서도 활개를 치고 있다. 백두산에서 왜 애국을 노래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어디서는 말한마디, 행동하나에 품위를 지키려 한다면 그것이 진짜 애국일것이다. 한국은 경제는 앞섰으나 중국은 문화에 앞섰다는 어느 중국인의 말속에 담긴뜻을 새겨보아야 한다. 우리가 진정 선진국이 되려면 겸손하면서도 떳떳할수 있어야 한다. 동남아에선 과거 "한국을 배우자"에서 이젠 "한국의 전철을 발지말자"로 바뀌었다. 우리는 개도국의 선두주자,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진입을 보장받은 나라로 자만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얼마전까지 외하획득을 위해 해외로 근로자를 내보냈던 우리는 외국근로자를 대하는 심성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또 외국에서의 돈씀씀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금액을 따지자는게 아니다. 돈을 쓰는 여명자의 품위를 따져볼때가 되었다. GNP성장률 얼마에서 이제 국민품위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따지는 모델이라도 개발해야 할것 같다. 광복50년. 우리국민의 품위, 도덕 수준은 얼마다 향상되었을까. 외국에 나가서는 우리식대로 멋데로 행동하고 때로는 바가지를 쓰고 또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관광객에게 친절은 고사하고 바가지를 씌운다면 무엇으로 세계화와 선진국 진입을 이야기할수 있는가. 빈곤의 극복을 우리민족의 위대한 업적이다. 그러나 빈곤의 극복이 곧 선진화는 아니다. 끝없는 도전을 계속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올 우리의 1인당 GNP눈 1만달러, 2005년에는 3만달러, 2010년이면 세계화7위의 경제규모가 된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때 우리 국민의 품위, 노력수준은 어느정도일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