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주평] '크림슨 타이드' .. 핵잠수함서 벌이는 파워게임

탈냉전시대의 적은 어디에 있는가. 이데올로기의 양극체제가 와해되면서 화살을 겨눌 과녁이 없어졌다. 그러나 활시위는 여전히 팽팽하다. 외부의 적 대신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이 새 과녁으로 자리잡았을 뿐이다. "크림슨 타이드"에서도 적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러시아 군부가 핵미사일을 장악해 미국을 위협한다는 가상설정만 제시돼있다. 정작 숨막히는 대결은 아군내부에서 일어난다. 러시아의 구소련 강경파 군부지도자가 핵기지를 장악하고 세계정복을 꾀하자 위협을 느낀 미국방성은 미사일 암호가 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위해 핵잠수함 알라바마호를 출정시킨다. 러시아 근해로 접근하던 알라바마호가 어뢰공격을 받고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직후 본국으로부터 비상명령이 하달된다. 적의 핵공격에 대비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라는 것. 그러나 메시지 수신중 통신장비가 고장나 최종명령을 확인할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부터 영화는 함장과 부함장의 대립구조로 바뀐다. 30년경력의 노련한 함장 램지(진 해크만)는 실전경험을 내세우며 선제공격을 주장한다. 반면 하버드출신의 젊은 부함장 헌터(덴젤 워싱턴)는 3차대전과 인류공멸을 우려, 이에 반대한다. 마침내 부함장이 함장의 지휘권을 박탈시켜 감금하고 뒤이어 함장 심복들의 반쿠데타가 이어진다.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은 함장과 부함장간의 신.구세대,흑백 인종, 냉전논리와 합리주의의 대립을 내포하고 있다. 외부와의 유일한 통로인 통신시설이 마비된 상황에서 잠수함내의 파워게임은 축소된 권력구조의 단면을 보여준다. 결국 이 대결은 부함장의 주장이 옳았던 것으로 밝혀진다. 양측 모두 최선의 행동이었다고 판결한 군법회의 장면은 사족.최종판단은 이미 관객들이 내렸기 때문이다. 두 배우의 심리연기와 거듭되는 반전이 흥행포인트. ( 9월2일 피카디리/롯데월드/동아/유토피아/경원/그랑프리/이화예술 개봉예정)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