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수교 30년] 기고 : 야마시타 신타로 <주한 일본대사>

금년은 종전 5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이 역사의 한굽이에서 양국관계를 논하기 전에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본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은 일의대수의 이웃나라로서 일본에 한국은 안전보장의 관점에서도 극히 중요한 나라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한국국민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크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70년대에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급속히 향상되어 아시안게임과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고,91년에는 유엔 가입을 달성했다. 그해 인구 4천5백만명의 한국의 GNP는 인구 3억2천여만명에 이르는 아세안 6개국의 GNP합계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 일찍부터 국제적 역할을 깊이 자각했던 한국은 "대외경제협력기금"및 "한국국제협력단"의 설립으로 경제기술협력 수혜국의 입장에서 공여국으로 이행해가고 있다.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기본적 가치를 일본과 공유하고 있는 중요한 나라다. 이러한 이유에서 일본과 한국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손을 맞잡고 서로 협력해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나라,다시 말하면 내추럴 파트너(natural partner)라고 생각한다. 국교정상화 이후 30년동안 양국관계가 인적교류 경제교류 등의 다방면에 걸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긴밀해져 온 것이 이를 단적으로 반영해주고 있다. 경제면에서도 지난 30여년 사이 양국간 교역규모는 1백8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또 민간기업에 의한 대한직접투자도 94년 건수면에서나 금액면에서나 미국을 제치고 수위를 차지했다. 양국의 경제관계는 비단 양적인 확대만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기술수준의 고도화에 따라 대등하고 수평적인 협력관계로 질적 발전을 이룸으로써 피차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일본의 대한반도정책의 기본은 바로 이와같은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중시하고 가일층의 개선과 강화를 지향해가는 것이다. 이와 함께 21세기를 향해 두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양국관계를 단순히 2국관계로만 보지 말고 보다 폭넓고 돈독한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가는 것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냉전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는 불안정한 과도기로 접어들어 지역분쟁문제,핵무기등 대량파괴무기의 확산방지및 군축문제,선진국의 실업과 도상국의 빈곤등 세계경제문제,그리고 지구환경 난민 에이즈등의 전지구적문제등 각종 과제에 직면해 있다. 평화롭고 안정된 국제환경과 개방된 자유무역체제 속에서만 살아나갈수 있는 양국으로서는 이 국제적 과제들을 바로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국제무대에서 서로 협력하며 해결을 향해 노력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경제문제를 일례로 든다면 양국정부간에는 2국간 경제문제와 아울러 국제경제분야에서의 협력면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경제협력개발기구(OECD)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을 중심으로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파트너십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그런뜻에서 오는 11월 오사카에서 열릴 APEC제3차 정상회담및 제7차 각료회의는 바로 양국이 다른 아시아태평양국가들과 더불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협력하는 상징적인 장이 될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양국이 최근 북한의 핵개발의혹문제에 미국과 힘을 합쳐 공동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상징되듯이 정치 안전보장분야에서의 긴밀한 협력과 함께 경제분야에서도 국제무대에서의 대등하고 미래지향적인 파트너십을 지향하고 있다. 이와같은 파트너십 확립의 전제가 되는 것은 양국국민간의 상호이해와 신뢰관계 양성이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간의 감정적 응어리나 민족적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여기서 한국국민들이 일본측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역사인식문제이다. 과거 일본의 침략행위나 식민지지배등은 한국을 위시한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깊은 반성위에서 세계평화의 창조를 위해 진력하는 것만이 일본이 나아갈 길인 것이다. 이는 일본정부의 한결같은 입장이며 일본국민 대다수의 결의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세에서 무라야마총리는 한국과 중국등을 포함한 아시아국가 방문시에 지난날 일본의 행위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뜻을 솔직히 표하는 동시에 군사대국이 되지 않겠다는 결의를 거듭 밝혀 왔다. 무라야마총리는 다시 작년 8월말,역사의 교훈을 미래에 살려나가기 위해 아시아 근린국가와의 역사를 직시하고 올바로 이를 후세에 전하며 아시아 각국과의 상호이해와 신뢰를 증진시켜 간다는 취지아래 전후 50년이 되는 올해부터 "평화우호교류계획"을 추진해가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이 계획은 역사연구를 지원 추진하고 각국과의 교류를 강화해 간다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역사인식의 심화노력은 여러 외국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본 자신의 문제로 자주적으로 진지하게 대처해가려는 것으로서 마침내는 한국등 각국의 일본신뢰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