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2일자) 국회운영의 파격적 개혁을

하찮은 국회란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어제 개회된 177회 정기국회야 말로 중요한 국회다. 크게는 의회민주주의 장래,작게는 총선을 앞둔 각 정당 미래의 판세가 석달여간의 금회기 운영 여하에 크게 좌우될 것임은 분명하다. 14대 47년 의정사를 통틀어 국회가 의원들 자신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실증해 보인 적이 없듯이,임기중 마지막 정기회기에 들어간 제14대 국회 역시 전과 구별될 어떤 업적도 올린 것이라곤 없다. 만일 이 기회조차 자당.자파.일신의 이해에 매달려 으르렁 거리다 허송할 경우 누구의 잘 잘못 이전에 이 땅에서 의회정치 자체의 존재가치를 무산시킬 위험성을 한낱 기우로 돌리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번 국회가 남다름은 또 있다. 대권지향 개인중심의 정국개편 후 첫 회기여서 새 4당이 자파와 개인의 명운이 걸린 총.대선에 온 정신을 쏟는 나머지 끝없는 파쟁에 말려들 가능성이다. 줄을 잘못 서면 정치생명이 끊어지는 판에 현실적 소득에 비해 노력만 많이 드는 조장입법등 궂은 일에 어느 정당 어떤 의원에게도 희생을 하라고 강요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같은 사고방식은 하나만 알지 들을 모르는 관행의 소산으로,더이상 견지돼선 안된다. 뭣보다 해가 다르게 축적되는 유권자의 자각이 이를 더 용납하지 않는다. 선거를 거듭하고 무위한 역대 국회의 반복을 경험하면서 본분 모르는채 사리에 눈 어두운 대표를 분간해내는 안목을 국민들은 이제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번 국회는 또 무역질서 개편이후 첫 정기국회로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 입법도 중요하지만 먼저 추곡수매를 둘러싼 농민과 WTO의 상반된 압력을 감내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본질적 문제라면 그래도 할 말이 있다. 수뢰혐의 야당의원의 구속을 둘러싼 하찮아 뵈는 여.야격돌이 더 큰 파행을 부를수 있다. 이 불씨가 국정감사 예산심의 법안처리등 일련의 국회일정을 싸잡아 정국경색에 불을지 위험성이다. 만일 그같은 우려가 현실로 온다면 총선 대선과 그 이후의 사태전개를 몽땅 가시권 밖으로 밀어내 국운을 다시 휘협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이번 국회야말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정쟁거리가 되어서는 안될 의제에 대해선 그 가부 판단을 의원각자의 양식에 맡기는 초당적 자유투표 제도를 외국처럼 허용해야 한다. 지방자치가 본격화한 마당에도 당의 행동통일 필요성만을 절대시하는 나머지 모든 투표권을 언제까지나 당이 장악한다면 국회발전은 기대할수 없다. 대정부 질의를 포함한 의원의 발언방식이 많이 개선은 됐지만 본회의건 상위건 일문일답 쪽으로 더 접근해야 한다. 다선우선등 그밖에 모순을 선례라고 맹종하는 불합리한 규칙.관행을 혁신하는 뼈깎는 노력없이 한국 의회정치는 더 이상 발전할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