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무궁화호'위성 발사실패 책임의 한계..신홍균

신홍균 무궁화위성이 드디어 제 궤도에 자리잡았다. 동경 116도. 뜻하지 않은 발사체의 결함때문에 그곳에 오르기 까지 난관도 많았다. 위성통신사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온 국민이 체감하게된 계기였으며 이를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것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적 사업에 대한 책임있는 추진에 관한 문제이다. 책임은 주로 도덕적 책임과 법적 책임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도덕적 책임은 바로 국가적 사업을 수행한다는 사명감에서 연유된다. 그것은 마치 한국인이기에 갖는 의무감과도 같은 것이다. 반면에 법적인 책임은 사업의 결과를 보고,그 실패의 경중도가 따져져야 하며,누구의 과실인지 또는 고의인지가 구분되어야 한다. 그리고 구별된 잘잘못에 대해서는 공평하고 엄격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도덕적 책임과 법적 책임의 차이 중의 하나는 그러한 처벌의 공평성에 있다. 일의 잘잘못에 대한 판단은 이미 수립되어있는 기준에 따라야 하는 것이고, 오늘 잘잘못을 가르는 기준은 내일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무궁화위성의 발사체가 예정된 고도에까지 올라가지 못한 결과로 발생된 위성체수명 단축이라는 실패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통신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실패에 대해서 발사서비스 제공사인 미국의 맥도널 더글러스(MD)사는 총계약금액의 잔여 10%부분만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의 법적인 책임의 청구 문제는 거론되지 않고 보험사에 의한 보험금 지급이 예정돼 있다고 한다. 이때 생각되는 것은 과연 이처럼 면책되는 것이 형평에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분명히 MD사가 무상으로 재발사를 하여 주는 것이 옳은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설지 모른다. 무궁화위성이 우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우리들의 정서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발사서비스의 제공이라는 계약상의 의무 제공에 관한 법리를 냉정한 자세로 이해하여야 한다. 우주공간에서 위성체가 설계상 하자,또는 부품 제작상의 결함으로 인해 고장나더라도 제작사는 면책된다는 것,발사 순간 발사체가 폭발하여도 발사서비스 제공사는 면책된다는 것이 우주산업계의 관행이다. 심지어는 관련 제작품의 기술상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권을 구매자측이 포기한다는 내용을 계약에 명시된다고 한다. 현재까지 발사된 백몇십개의 상업용 위성의 제작계약및 발사서비스 계약 모두에 그러한 취지의 면책조항이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책이 인정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주산업의 높은 위험성에서 찾아진다. 아무리 최신 기술이 사용되더라도 어쩔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하자보수 책임을 제작사들에 지운다면 어느 누구도 제작산업에 투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산업정책적 고려가 배경에 깔려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내 기업들과 우주개발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정책이 각 계약마다 면책조항으로 실리면서 구체화되어왔고 이제 그것은 국제관행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실무과정에서 발전된 법리의 영향도 있었다. 첫째,구매자의 재정부담면에서이다. 면책조항을 구매자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구매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제작사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이때 그 보험가격은 무궁화위성의 경우와 같은 발사 3개월전에 구입하는 것보다 비쌀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매자는 굳이 면책조항을 거부하려고 하지않는다. 둘째,그래도 구매자가 면책조항을 거부한다고 하였을때의 경우다. 전세계에 결코 5개가 넘지 않는 위성체 제작사 또는 발사서비스 제공사들중 누가 물건을 팔려고 할 것인가가 의문시된다. 이런한 배경에서 면책조항은 구매자와 판매자의 불공평한 관계의 표상이 아니라 위험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업자의 이익도 보호되고 구매자의 이익은 재정적으로 보장되는 차원에서 오히려 형평에 맞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면책지위에 대한 도전도 있었다. 미국에서 면책조항에도 불구하고 위성체 제작사 또는 발사서비스사의 중과실( gross negligence )을 이유로 구매자측이 제기한 소송사건 3건이 그것이다. 그러나 모두 구매자측의 판정패였다. 지난달 21일부터 3일간 중국 북경에서 제3회 아시아 항공우주법 세미나가 개최된바 있다. 우주산업체들의 면책지위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확인된 것은 일본의 경우에도 미국 제작사와의 계약뿐만 아니라,일본 기업이 제작하는 방송위성용 중계가 제작계약에서도 면책이 인정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등 유럽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우주산업 발달을위해 현재까지 수립되어온 법적장치로서 최선은 면책의 인정이라는 점이 시사되는 것이다. 무궁화위성의 수명 단축이 확실시된 시점에서 한국통신은 발사 실패에 따른 재정적 손해는 보험사에 의해 보상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재정적 손해만이 고려되고 책임문제가 거론되지 않는 배경은 바로 이러한 우주산업의 특수성에 있다고 사료된다. 따라서 무궁화위성의 발사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음에 있어서 다른 공공 사업의 경우와는 다른 시각이 취해져야 한다. MD사에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예컨대 재발사 요구를 왜 안하는가,왜 그러한 불공평한 계약을 체결하였는가에 관한 책임을 한국통신측에 묻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우주산업의 특수성과 국제관행을 감안하여 볼때 한국통신에 그러한 책임을 묻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향후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발달도 생각해봄직하다. 우리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한 법적 장치를 수립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통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사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던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겼다고 책임이 무조건적으로 추궁된다면 이제 막 시작하려는 위성통신사업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는 이 분야의 인재 양성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차세대 위성을 우리 손으로 만들고,한국이 2000년대에 항공우주산업 10위권 국가로 등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과 기술만은 아니다. 이제 위성통신사업을 막시작하려는 우리에게는 사업의 성패에 따라 상과 벌을 매김에 있어서도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는 바로 우리들의 자세에서 우러나온다. 무궁화위성 발사 실패의 책임이 물어져야 한다면 그러한 특수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며,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모두가 새로운 자세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보다 바람직한 우리들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