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185) 제6부 진가경도 죽고 임여해도 죽고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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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해보시라니까요" 지선이 등잔불 심지를 더 올리며 다시 재촉을 하였으나 방문 밖에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지선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방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따고 살며시 열어보았다. 밖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회나무 잎들이 수북이 쌓여 희미한 달빛 아래 말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참 싱거운 도련님도 다 있군" 지선은 방문을 도로 닫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서야 보옥이 왜 자기를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지선은 갑자기 온몸이 달아오르면서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을 허벅지 사이로 밀어넣어 조몰락거렸다. "아흐 아흐, 부처님이시여, 차라리 이 부분을 도려내가 주십시오" 지선은 절정감을 맛봄과 동시에 부처님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보옥이 주방 창에 붙어서서 안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에 온통 신경을 빼앗겨 있는데, 지능이 진종에게 숨가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아이구, 이 일을 어째" "왜?" "아이구, 소리를 막 지르고 싶어" "참아. 누가 듣잖아" "못 참겠는데. 아이구, 아이구, 나 죽네" "그렇게 좋아?" "응. 좋아. 미칠것 같애" "부처님보다 더 좋아?" 저런 못된 놈이 있나. 보옥은 그런 순간에 부처님 이름을 들먹이는 진종이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부처님? 아이구, 우선 날 살려줘" 지능은 진종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헐떡거리기만 했다. 보옥은 지능이 불심이 지극하여 정허 밑으로 들어와 여승이 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지능은 의지할 데가 없는 고아 신세로 정허의 몸종처럼 절간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엉겁결에 여승이 된 처지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지선도 피장파장이었으나 지능보다는 좀 더 불심을 키우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어떻게 살려줄까?" 진종이 지능이 절정으로 오르기 직전에 그녀의 몸을 가지고 희롱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보옥은 진종이 미워죽겠으면서도 부럽기 그지없기도 하였다. 저렇게 여자를 죽였다 살렸다 하는 기술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이구, 내가 먼저 죽네" 진종이 지능의 몸을 가지고 까불다가 자기가 먼저 파정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샘통이다. 보옥이 피씩 미소를 짓는데, 지능도 어느새 절정으로 올랐는지 숨 넘어가는 소리를 거칠게 내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