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7일자) 경제 정보전과 안기부의 역할

클린턴 미 대통령이 중앙정보국(CIA)에 경제첩보활동 강화를 지시하는밀명을 내렸다는 최근의 보도는 국가간 경제첩보전이 물밑에서 얼마나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실감케 해준다. 선진국 정보기관들이 정부의 통상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막후공작을 하거나 기업의 산업스파이 활동을 지원해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서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 대통령이 직접 경제첩보전을 독려하고 이에 따라 CIA가 외국의 기업및 기업인에게 대해서까지 첩보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나선것은 분명예삿 일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내용은 이러한 첩보활동이 단순한대응첩보활동 차원을 넘어 외국 주요기업의 기술정보까지 빼내 미국의 정책입안자나 기업에 제공해 줄 수도 있음을 CIA책임자가 공공연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때를 같이해 국내에서도 국가안전기획부가 후원하는 산업기밀보호를 위한 세미나가 지난 15일 대한상의에서 열려 기업 관계자들의 높은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기업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으로 평가되는 추세에서 이제 경제정보,그중에서도 특히 산업기밀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인식이 민.관을막론하고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찍부터 선진국들은 경제정보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산업기밀의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에 반해 우리 기업들은 핵심적인 산업기밀마저도 방만하게 관리해온게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정보가 기업경영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어버린이상 제품의 개발.생산에 필요한 전문 기술정보와 기업의 경영전략과 관련한각종산업기밀의 보호체제 구축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수 없다. 국제적으로 산업스파이 활동이 날로 다양화 지능화되고 있는데다 이러한활동이 범국가적 지원을 업고 있음에 비추어 우리도 기술개발노력 못지않게축적된 기술정보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제도면에서는 경제정보의 효율적 보호가 가능하도록 관계 법령을 개선하는일이 시급하다. 또 산업기밀의 개념이 특허와는 달리 애매모호한 점을 감안해 기업나름대로 특성에 맞는 독자적인 안전판을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기밀이란 아무리 단단히 움켜쥐어도 손아귀의 물처럼 새기 쉬운 법이다.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도 이제는 경제첩보전에서 방어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공격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관련해 안기부가 최근 ''경제첩보전의 첨병''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바람직한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차제의 정보수집 능력이나 산업보안 의식이 희박한 중소기업을 위해서도종보기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검토해보도록 권하고 싶다. 요컨대 국제 경제 정보전쟁이 단순히 기업간의 차원을 넘어 범국가적중대사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이에 대한 산.학.연.관의 총체적대응전략이 하루빨리 수립돼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