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유럽최전선] (3) 동구-스프링보드

폴란드 바르샤바시에서 동북쪽으로 30km 떨어진 프푸쉬코프시. 2년전만해도 잡초만 무성했던 이 곳에 지난 5월 최첨단 생산공장이 들어섰다. 그 첨단 공장은 대우전자가 완공한 50만평 규모의 전자복합단지다. 사회주의의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동유럽인들을 놀래키기에 충분한 규모다. 잠들어 있던 동유럽 땅에 세워진 한국업체의 생산기지는 또 있다. 삼성전자는 헝거리에서 컬러TV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관은 동베를린의 브라운관 공장을 지난 92년 인수했다. 대우자동차는 폴란드 FLS사를 사들였고 이 지역 최대 업체인 FLO사 마저 이달말 인수한다. 루마니아 로대사와 체코의 아비아사도 대우로 주인이 바뀌었다. 국내업체의 동유럽 진출 러시가 갖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동유럽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것 이상의 노림수가 있다. "동유럽에 세운 공장을 전초기지로 동서 유럽시장 전체를 공략하겠다"(대우전자 남귀현부사장)는 야망이 담겨 있다. 한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다른 지역을 공격하는 "스프링 보드(spring board)전략"이 구체화된 것이다. 동유럽을 스프링 보드로 삼겠다는 것은 투자규모에 잘 나타난다. 대우자동차는 폴란드 FSL사에 FLO사에 각각 3억5천만달러와 11억달러는 오는 2001년까지 투자할 방침이다. 또 체코 아비아사에 3억4천만달러를,루마니아 로대사에 5억달러를 투입할계획이다. 목표는 동유럽 최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기지 구축이다. 동유럽 3국에서 승용차와 상용차를 연간 50만대씩 쏟아내겠다는 구상이다. 대우전자는 내년중 폴란드 전자단지에 6천만달러를 추가 투입한다. 컬러TV와 세탁기에 이어 냉장고 생산에 착수하기 위해서다. DY(편향코일) FBT(고압변성기)등 주요 부품도 현지에서 양산할 계획이다.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현지에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헝거리 TV공장을 중심으로 제품별 생산기지를 동유럽권에 세운다는 전략도 세워놓고 있다. 동유럽이 이처럼 유럽공략의 전진기지로 떠오른 이유는 이렇다. 우선 생산여건이 서유럽보다 월등히 좋다. 대우전자 폴란드 공장에서 일하는 현지인 종업원의 월급은 4백-5백달러선이다. 이 회사의 프랑스 전자레인지에서 종업원에게 지급하는 월급이 9백-1천달러라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공짜"다. 그렇다고 인건비가 싼만큼 생산인력의 기술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동유럽에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기술인력이 풍부하다. 삼성전관이 동베를린 공장의 종업원들을 제3국의 주재원으로 파견한 것은인적자원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회사는 브라질에 새로 건설하는 공장의 라인설치요원으로 동베를린 공장 종업원을 보냈다. 한마디로 "양질의 인적자원을 싼 값에 쓸 수 있다"(대우전자 양재열사장)는얘기다. 동서유럽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도 국내업체의 진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현재 EU와 폴란드등 대부분의 동유럽국가사이에는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돼있다. 물자가 오가는 데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동유럽에서 생산된 제품은 EU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돼 부품의 현지조달의무등에 적용되지 않는다"(정기옥 주폴란드대사). 게다가 폴란드등은 오는 98년 EU가입을 추진중이다. 한국업체의 동유럽진출이 유럽최전선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동유럽 시장 자체의 잠재력도 큰 매력이다. "사회체제의 전환기인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시장이지만 앞으로 성장가능성은 무한하다"(삼성전자 이만식헝거리 생산법인장)는 것. "일본업체들보다 늦게 진출해 시장개척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유럽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대우전자 최정수 폴란드법인장)는 계산이다. 국내업체의 동유럽 진출은 낙관만은 할 수 없다. 사회간접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하다는 점에서 경영여건이 썩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동유럽은 세계경영의 중심지"(대우그룹 김우중회장)임에 틀림없다. 오른쪽엔 서유럽 왼쪽에는 구소련이라는 엄청난 시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업체들이 동유럽을 스프링 보드로 삼아 좌소우구로 뻗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