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227) 제7부 영국부에 경사로다 (35)

유봉래의라는 것은 흰 담을 끼고 있는 그 삼칸짜리 집을 두고 보옥이 지어본 이름이었다. 그곳은 가정이 "달 밝은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면 덧없는 인생을 살았다고는 하지 않으리"운운하며 제법 그럴듯한 시를 짓도록 영감을 준 집이기도 했다. 그 화려한 집과 소박한 농가를 거칠게 비교하며 유봉래의 쪽이 낫다고하는 보옥의 말에 가정이 역정을 내며 나무랐다. "이 무지한 놈아! 어찌 네가 이렇게 맑고 그윽하고 질박한 미를 알겠느냐. 온갖 치장이 된 좋은 집에서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생활만 하면서 통 공부는 하지 않으니 이런 것의 아름다움을 볼줄 아는 눈이 생기겠느냐" 가정 역시 고대광실 같은 집에서 빈둥거리며 소일을 하면서도 아들인보옥에게는 따끔하게 일침을 놓고 있었다. 아버지의 꾸지람에 잠시 얼굴이 붉어졌던 보옥이 워낙 많은 질책을 듣다 보니 그것도 만성이 되어 금방 평상의 얼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직접 서운함을 표현하지는 못하고 빙 둘러 이야기하였다. "아버님의 말씀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지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옛사람들이 "천연, 천연"하며 글을 짓기도 하였는데, 도대체 천연이 무슨 뜻입니까?" 문객들은 보옥이 너무나 엉뚱한 질문을 던지자 그가 아버지 가정에게서 또 꾸지람을 듣지 않을까 자신들이 조마조마해졌다. 그래서 문객 중 하나가 얼른 천연의 뜻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보옥 도련님은 유식하게 어려운 다른 것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 아주쉬운 천연이라는 말의 뜻은 왜 모르고 계십니까. 천연이란 사람의 힘으로, 다시 말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보옥이 천연이라는 말의 뜻을 몰라 물었을리 만무하였다. 뭔가 아버지 가정의 말에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걸기 위해 묻고 있음이틀림없었다. 보옥이 아버지를 잔뜩 무서워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반발심이 일어나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보옥의 입에서 가정의 심사를 건드릴 말들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런 후비 별채 원내에 농가 마을을 지어놓은 것은 천연에 속합니까, 인공에 속합니까?" 자연 지세를 따라 농가 마을이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니므로 천연이라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 문객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고 있는중에 한 문객이 재치있게 대답했다. "아까 가정 대감님도 인공적으로 지어졌으나 마치 천연인 것처럼 농사짓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고 하였지요"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