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설비시장] (기고) 국내산업 환경변화와 과제..송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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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재 우리나라의 발전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지 8년후인 1887년에 미국의 에디슨사에 의해 시작됐다. 그후 1900년대 중반까지 미미하지만 꾸준히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이북에 건설된 관계로 1948년 대남단전과 6.25동란에 의한 분단으로 인해 남한의 전력사정은 매우 심각하게 되었다. 특히 지난 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추진으로 전력수요가 더욱 급증하게 되자 전력난 해소가 주요 정책과제로 부상했다. 이에따라 정부는 발전분야에 집중투자키로 하고 "전원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연대에 건설한 발전소는 대부분 선진국의 기자재와 건설기술에전적으로 의존할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그동안의 지속적인 경제개발계획추진에 힘입어 산업구조가 어느정도 고도화되어 중공업화가 상당히 진전됨에 따라 제3차 전원개발 시작해인지난 76년부터 본격적인 발전설비 국산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국산화 촉진 대상기종으로는 영동화력 2호기가 선정되었다. 이어 지난 78년 국산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수.화력발전계약 방식을 턴키 발주방식에서 국내업체를 주계약자로 하는 분할발주방식의 경쟁입찰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발전설비분야에 대우 현대양행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등 4대 업체가참여함으로써 공급과잉 상태가 되자 정부는 지난 79년에 대우와 삼성 현대중공업과 현대양행을 묶는 이원화 조치를 취했으나 실효를 거두지못했다. 그후 지난 80년 국보위는 발전설비 제작및 설치를 한국중공업에 일괄 발주하는 소위 발전설비 일원화조치를 취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한국은 세계 주요 발전설비 생산국으로 부상하였다. 전원별 구성도 종래의 수.화력 위주에서 다양화되었으며 특히 고도기술을 필요로 하는 원자력 발전비중이 28%수준으로 크게 높아졌다. 생산능력도 대폭 향상되어 1,000MW급 발전설비까지 우리 손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오는 2000년에는 1,350MW급 차세대 원전용 설비를 생산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내제작 경험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토대로 지난 85년부터는 수출도시작했다. 미국 일본을 위시하여 태국 중국등 아시아지역과 중동지역 등으로 수출선을확대하고 있다. 비록 수출분야가 핵심분야는 아니지만 생산역사가 일천했던 점에서 보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수 없다. 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수출국이 된 것이다. 국내 발전설비 산업의 이같은 비약적인 발전은 80년대 후반부터 추진한 본격적인 기술자립정책과 관련업계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라 할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발전설비 산업의 대내외 환경은 종래에 비해 매우 어두운 실정이다. 대외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과 함께 정부조달협정이 발효되어오는97년부터 국내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공급과잉인 상태에서 동남아 중국등 일부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도 불가피하다.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낮은 우리는 불리한 입장이다. 또한 선진국의 기술이전 기피현상 심화는 기술자립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한국에 안타까운 현실이다. 내적으로도 참여 희망업체의 원성이 컸던 일원화가 해제될 예정이고 생산체제가 경쟁체제로 전환될 경우 그동안 발전설비공급을 독점해온 한국중공업에는 큰 부담이 아닐수 없다. 더욱이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시장실패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같은 산업환경 변화를 극복하면서 한국이 발전설비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당면과제가 적지 않다. 첫째, 발전설비 산업의 개방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해외 유수기업에 대한 대항력을 확보해갈수 있는 유효경쟁체제 구축이다. 둘째, 근원적인 대책은 아니지만 국제경쟁입찰시 국내기업에 유리한 계약 방안 모색이다. 셋째, 발전설비 산업의 경쟁체제구축을 위해 발전설비 일원화 해제와 한중민영화 실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일원화 해제시 해제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넷째, 기술력제고 노력과 효율적인 표준화의 촉진을 통해 국산화율을 높여경쟁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수시장 협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출 산업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당면과제는 역시 기술력 향상과 사업의 국제화가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