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주평] '천국보다 낯선' .. 아메리칸드림의 이면 그려

"천국보다 낯선"은 이렇다할 줄거리도 주목을 끌만한 대사도 없을뿐만 아니라 화면까지 흑백으로 처리된, 그야말로 "낯선"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로카르노영화제 그랑프리를 휩쓸었으며 미국비평가협회로부터 최고의 영화로 뽑혔다. 미국독립영화의 기수로 불리는 짐 자무쉬감독은 기존 영화문법을 완전히 뒤집는 "형식파괴"를 통해 일그러진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놀랍도록 객관화시켜 보여준다. 이 작품은 82년 그가 30분짜리 단편영화로 만들었던 "신세계"를 1부로 하고 2부 "일년 후"와 3부 "천국"을 추가시켜 84년 완성했다. 내용은 지루할 정도로 느슨하다. 아메리칸 드림에 휩싸인 미국의 이면을 그린 이 영화는 산업사회의 황폐함과 의사소통의 벽, "신세계"에 대한 꿈의 상실을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허름한 아파트에 처박혀 빈둥대는 청년 윌리와 그를 찾아온 사촌여동생 에바. 헝가리출신인 이들에게 미국은 기회의 나라가 아니라 그저 무감각한 일상의 공간일 뿐이다. 에바가 클리브랜드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면서 1부는 끝나고 윌리와 그의 친구 에디가 도박으로 딴 돈 600달러를 들고 클리브랜드로 뒤따라가 해후하는 2부가 이어진다. 그러나 그들앞에 펼쳐지는 것은 눈덮힌 에리호수처럼 황량한 겨울풍경. 이들이 여행길에 나서는 3부 "천국"도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습군. 낯선 곳에 왔는데 모든게 똑같다니". 윌리와 에디가 개경주로 돈을 탕진한 뒤 경마장으로 간 사이 에바는 우연히 거금을 손에 넣고 혼자 떠난다. 그녀를 찾아나선 두사람도 공항에서 엇갈리며 뿔뿔이 흩어진다. 슬라이드처럼 툭 툭 끊어지는 필름과 고정된 카메라, 관객과의 거리 확보등 낯선 요소투성이지만 영혼을 감싸안는 따뜻함으로 인해 보는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영화. ( 11일 동숭시네마텍 개봉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