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지역을 가다] (29) 남아공 <4>..신나코리아 숱한 좌절

"토끼를 잡는데 도끼를 휘두른 격이었지요" 신나코리아 허문준사장(41)은 한국에서처럼 소규모자본이 소요될 것으로생각하고 신발제조를 시작했다가 그동안 5백만달러(현지재투자포함)란거액을 투자하게 된 사정을 이렇게 비유했다.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기까지 시장조사의 실패, 거래선 확보의 어려움,노동자파업등으로 몇차례 고비를 넘겨야 했다고 그는 밝혔다. 허사장은 지난 90년 스와질란드를 통해 입국해 1백85만달러를 투자,운동화제조에 착수했으나 이듬해부터 들어온 값싼 중국산 제품에 밀려 시장을 빼앗겼다. 허사장이 당시 의존했던 현지 컨설턴트의 자료가 대외적인 상황을 전혀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장에 관한 정보가 상당부분 엉터리였던 것이다. 허사장은 결국 큰 손해를 본 후 운동화에서 현재의 가죽캐주얼화제조로 업종을 전환했다. 그러나 이때에는 자금융통에 큰 곤란을 겪었다. 신나코리아는 초기 3년간 도매업자만을 상대하면서 제품 출하후 4~6개월이지난다음 대금을 회수했다. 메이저 체인점들과 거래하면 제품 출하후 1~2개월이면 대금을 받을 수 있으나 높은 장벽으로 처음에는 이들과의 거래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출하에 앞서 생산원료를 한국에서 수입한후 제품제조에 걸리는 3개월을합치면 투자후 자금이 회수되기까지 보통 7~9개월이란 장구한 세월이 걸렸다"고 허사장은 말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흑인근로자들은 어느날 갑자기 휴가수당을 미리 달라고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먼저 진출했던 일부 대만투자자들이 외국투자기업에 대한 환율우대정책이 폐지(지난3월)되기 전에 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 환차익만 챙긴후 1~2년만에 갑자기 도망가는 사례가 빈번했던 것이다. 노조과격파가 이를 교묘히 이용,파업을 부추긴 것이다. 허사장은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직면해 여러차례 설득을 시도했으나 실패,그들의 요구를 들어준 다음 불법파업임을 통고하고 전원 해고했다. 이후 한동안 공장가동을 중단하고 온건노조원들만을 다시 규합해 작업을재개해야 했다. 허사장은 숱한 좌절을 겪었지만 "운동화에서 가죽신 생산으로 업종을 전환한 것만은 성공적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