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서울의 '독일병정' 이야기 .. 송숙영 <소설가>

"독일병정" H의 소문을 들은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어느 고교 동창회에서 듣고는 어쩌다 소문이 과장됐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흘려 넘겼었다. 공무원에 관한 뉴스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으므로 기껏해야 어떤 선승의고행이나 결벽증으로 인한 에피소드로 여겼던 것이다. 서울 그것도 2차대전이 끝난지 40년이나 지난 1995년에 아직도 "독일병정"이 살아있다니 무슨 소리냐 싶기도 했다. 그러나 소문은 사실이었다. 어떤 나라에서든 민은 정부의 잘하는 일을 칭찬하기 보다 잘못을 큰소리로 성토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 특히 무슨일만 생기면 지식 여부에 관계없이 대부분 여름들판의 개구리들처럼 목소리를 드높여 합창을 한다. 옛부터 탐관오리들은 하루아침에 큰독버섯이 된것은 아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되는 관리소홀의 틈으로 서서히 자라서 미색과 독을 섬 하게 뿌리는 것이다. 그러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소문의 꼬리와 날개는 민들레씨처럼 날라다니는 본능이 있기때문이다. "열흘붉은 꽃은없다"라는 말처럼 종신직이 약속되어 있지 않은 공무원들의 숙명때문일까? 복지 혜택과 노후대책이 보장되지 못했던 탓일까. 어려운 상황속에서 청렴을 강요당하고 실천해온 박봉공무원들의 딱한 신분을 우리 시민들은 지금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인천북구청의 그절망적인 세무비리는 지난해 여름 엽기적 살인사건내지 강도높은 지진처럼 터졌다. 모든 공무원이나 정부는 몇마리의 까마귀때문에 얼굴에 먹칠을 했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떼죽움을 당한격이 되었다. 필자도 최근 세무담당구청직원의 비리를 직접 경험했다. 그러나 벙어리 냉가슴앓듯 꾹꾹 참는 사이에 더큰 희생자로부터 고발당해서 그는 단칼에 베이고 말았다. 겁없이 탈취해간 액수가 너무컸고 그 빈도도 너무잦았던 것같다. 그는 쉽게 너무 큰돈을 요구했고 세금을 탐감해준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시민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 부패한 탐관오리에게 시달리는 와중에 때마침 신화적 인물인 독일 병정을 직접 찾아가게 되었다. 법을 내세워 민원을 1년동안이나 일축해버리던 공무원들의 무성의한 태도 때문에 뼈가 녹는 고통속에 있던 우리는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독일병정 덕분에 꿈같은 기적을 이룬것이다. 너무도 고마워 명절무렵 한병의 녹차를 들고 인사를 갔다. "죄송하지만 저는 모든 종류의 차를 안마십니다" 그는 겸손하게 거절했다. 한병의 쟈스민차를 거절하다니.선물이 너무 초라했던것인가? 무엇으로 신세를 갚아야 할것인지 전전긍긍하던 어느날 용기를 내서전화를 걸었다. "백골난망으로 신세를 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대답인즉 간단했다. "나는 공무원입니다. 나는 공무원으로서 도와드려야할 민원을 해결해 드린 것 뿐입니다. 지금 너무 바빠서 이만끊겠습니다. 그런 전화라면 다시 걸지 마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겸손하다. 필자는 처음에 무안하고 황망했다. 솔직히 너무나 예외의 인물이 살아있음에 놀라고 당황했다. 그에게 사란 없다. 모든게 민을 위한 의무며 봉사였다. 그렇게 정렴한 공복이 살아숨쉬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 올것만 같다. H국장의 풀을 빳빳이 먹인 소박한 차림새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의 맑고 초롱초롱한 시선이 그것을 암시한다. 카랑카랑한 거절의 인사가 나의 가슴을 행복으로 설레게한다. 비자금사건과 그로인한 전직대통령의 구속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로 온국민이 울분과 비통에 쌓여 있지만 우리사회 어딘가에 H국장같은 사람이 남아 있는한 한국의 미래는 어둡지만은 않을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