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골프] 항우와 조지 너슨 .. 소동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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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손에 넣을것 같던 항우가 해하에서 패퇴한 후 강동으로 쫓기다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여 장강에 몸을 던져 자살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어떤 이가 항우의 파란만장한 삶을 애닳아 하여 시 한 수를 지었다. 승패병가불가지, 포착인치시남아, 강동자제다호걸, 권토중래불가기 그 내용인즉 대체로 이러했다. 전쟁에서의 승패는 제아무리 훌륭한 전쟁전문가랴 하여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대장부라면 때론 치욕스러운 상황도 참아내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항우의 고향인 강동땅에는 예부터 영웅호걸이 많았다. 그들을 모아 바람이 일듯 다시한번 일어났더라면 세상사 어찌 되었을지 모를 일인데 자살은 왠 자살인고? 조지, 너슨은 캐나다 위니팩출신이다. 그는 1957년경 벤 호건의 스윙을 배우기 위해 미국의 투어프로인 자기선배의 캐디를 자청하여 미국에 들어왔다. 그후 그는 벤 호건 못지않은 스윙의 거장이 되었다. 한번은 샌.안토니오오픈이 열리기 전 어느날 그는 하비페닉을 찾아가 레슨을 부탁했다. 볼을 20여개 쳐 보인후 너슨은 페닉에게 자신의 스윙이 어떻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러자 페닉은 너슨에게, "클럽을 챙겨 트렁크에 넣고 어서 샌.안토니오로 가시오. 당신은 나의 도움이 필요없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런 조지 너슨을 두고 잭 니클로스는 그가 백만달러짜리 스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멋진 스윙은 투어에서 그에게 별반 재미를 주지 못했다. 특히 그의 퍼팅실력은 그의 스윙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어서 니클로스는 그가 10센트짜리의 퍼터를 가지고 있다고 비꼴 정도였다. 그런데다가 그는 향수를 달래지 못해 도박습관까지 얻게 되어,투어에서 우승하고 받은 상금을 그날 저녁의 도박판에서 몽땅 날려 버린 적도 있었다 한다. 그는 1972년경 투어에서 은퇴하고 레슨을 하면서 시니어투어를 기약했었으나 페암에 걸려 51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결국 그는 "승윙의 마에스트로"라고 칭송되었을뿐 참담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이다. 조지 너슨의 일생을 보노라니 항우의 죽음이 떠오른 것이다. 필자는 늘 항우의 삶을 되씹으면,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이라도 예상치 못한 취약점이 있고 그로 인해 의외로 쉽게 파멸에 이르던 모습을 생각해낸다. 그리고는 인간의 나약함에 설움을 느끼곤 했다. 피터 제이콥슨의 아버지는 피터와 함께 18홀의 골프코스를 돌고 나올 때마다 그에게 두가지 질문을 하였었단다. 우선 재미있었느냐? 그리고 어떤 것이든 의미있는 한가지의 생각을 하였느냐? 그런데 필자는 골프장을 돌고 나와 그날의 골프내용을 생각하면 항우의삶을 떠올린 때보다 더 절실하게 인생을 곱씹어 보곤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