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6일자) 중소기업 불황에 대책 강구해야

경기가 정상적인 순환과정에 의해 하강국면에 돌입,불경기가 닥칠 경우에는 조직과 덩치가 큰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적응력과 유연성에서 앞서 덜 고통스러울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제외적인 돌발사태로 인해 경기가 급격히 냉각되거나 그럴 위험이 높은 경우에는 중소기업에 1차적인 충격과 피해가 가해진다. 노태우씨 비자금파문으로 중소기업들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수사에서 처리까지 앞으로도 상당기간이 걸릴 전망이다. 게다가 이제는 또 5.18특별법 제정과 그 뒤에 올 불확실한 정치-경제-사회상황전개까지 겹쳐 경제가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비자금파문으로 이미 충격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고통이 갈수록 더욱 커질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비자금파문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여파는 아직 단편적으로밖에 거론되지 않고 있다. 돈이 안돌아 사채마저 구하기 힘들어졌다든지,물건이 안팔리고 부도가 늘고 있다든지,창업이 부진하고 휴업체가 부쩍 많아졌다든지 하는 얘기들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는 정도다. 아파트와 주택분양이 안돼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의 경우는 특히 심해 부도업체가 예년의 2배이상 늘었는데 오늘보다는 내일을 더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내년 경기의 급강하 가능성에 더 예측의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딱한 것은 중소기업의 이같은 고통을 덜어줄 묘안이 없는 현실이다. 쓸만한 지원책은 거의 모두 동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정부당국도 그동안 적지 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온게 사실이다. 단지 정부가 마련한 지원책이 은행창구나 산업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등의 실효성문제는 있다. 은행의 담보대출 관행이나 납품대금의 어음결제관행과 같이 정부로서도 어쩔수 없는 현실적 제약도 많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늦으면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우선 정확한 실상파악부터 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인력난-판매난-기술부족 등의 애로가 비자금파문 이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각종 지원책의 이행상황과 효과는 어떤지를 파악해야 한다. 재경원이 이미 실태점검에 나섰다는 얘기가 있으나 중소기협중앙회등 유관 단체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다음은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새로운 대책을 다각도로 짜내야 한다. 금융계와 대기업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납품대금의 어음지급 관행시정에 대기업쪽에서 개혁차원의 협력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어음 기간단축만으로는 안된다. 은행의 어음할인 한도확대만으로도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고 근본적 해결도 될수 없다. 마지막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활성화가 중요하다. 중소기업이 약자로서 당하고 있는 불공정거래의 폐해와 불이익을 호소하고 시정할수 있어야 한다. 노씨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오랜 정정유착의 그릇된 관행을 단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터이지만 중소기업이 그야말로 사업하기 힘든 풍토,온갖 왜곡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장래를 기대할수 없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