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289) 제8부 아늑한 밤과 고요한 낮 (26)

보옥이 이불을 상운의 목 근처까지 당겨 올려 여며주면서 상운의 귀 뒤로머리카락을 슬쩍 젖혀주었다. 그러면서 보니 발그스름한 상운의 귓볼이 예쁘장하고 탐스러워 이빨로 깨물어보고만 싶었다. 그러나 차마 이빨을 들이댈 수는 없고 하여 보옥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상운의 귓볼을 살며시 쥐어보았다. 따뜻한 기운이 귓볼에서 손가락으로 전해져 왔다. 여자들의 몸은 어느 구석을 만져도 감칠맛이 난단 말이야. 보옥이 소리가 날 정도로 또 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바람에 대옥이 인기척을 느끼고 부스스 눈을 떴다. 보옥은 얼른 상운에게서 물러났다. "아침부터 웬일이에요?" 대옥이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보옥을 쳐다보았다. "지금이 이른 아침이야? 일어나 보라구" "그럼 우리 일어날 테니 잠시 밖으로 나가 있어요.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 보옥이 방 밖으로 나가 있는 동안 대옥이 상운을 흔들어 깨워 같이 옷을 갈아입었다. 보옥이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 몸종들인 자견과 취루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세숫물을 대야에 담아 들고 왔다. 상운이 취루가 들고 온 대야의 물로 세수를 하고는 취루더러 물을 버리라고하였다. 취루가 대야를 들고 나가려 하자 보옥이 얼른 취루를 막아서며 말했다. "나도 그 물에 세수할래.구태여 내 방으로 도로 가서 세수할 필요 없잖아" 다른 사람이 말릴 사이도 없이 보옥이 대야를 취루에게서 빼앗아 바닥에 놓더니 허리를 굽혀 푸푸 소리까지 내며 세수를 하였다. 보옥은 상운의 몸을 만지고 싶었던 마음을 상운의 세숫물로 얼굴을 씻음으로써 풀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대옥은 그런 보옥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세수를 마친 보옥은 상운에게 머리를 땋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상운이 대옥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지만 보옥의 성화에 못이겨 보옥을 경대앞에 앉히고 머리를 땋아주기 시작했다. 보옥은 자기가 사월의 머리를 빗겨줄때 사월이 그랬던 것처럼 넌지시 상체를 뒤로 기울여 상운의 젖가슴에 어깨가 닿도록 하였다. 상운도 그 감촉을 느끼는지 가만히 한숨을 쉬어가면서 보옥의 머리를 몇 가닥으로 땋아 모아서 빨간 댕기로 묶어주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패물들을 꽂아주었다. 대옥은 옆에서 자견이 떠온 물로 세수를 하면서 입을 비쭉거리며 일부러 물을 튀기기도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