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남, 필리핀에 제4반도체공장 건설] 왜 필리핀에 투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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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남그룹의 "필리핀 프로젝트"에는 이 나라를 지렛대로 삼아 "세계화된 종합첨단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반도체와 통신분야의 대필리핀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그룹의 사업구조를 첨단산업 중심체제로 전환하고 동시에 세계화를 이룩하겠다는 구상이다. 아남의 입장에서 보면 필리핀은 사업구조고도화와 세계화를 위한 "전진기지"인 셈이다. 그러면 아남은 왜 필리핀을 선택했을까. 이유는 크게 보아 세가지.첫째는 필리핀의 적극적인 투자요청을 꼽을 수 있다. 사실 필리핀은 투자지역으로서는 매력적이지 못하다. "섬으로 구성된 지형적 조건이 나쁘고 항만 공항등 인프라가 낙후돼 있다"(김주진아남그룹회장). 그렇기 때문에 필리핀에 투자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아남이 노린 것은 바로 이점이다. 첨단산업 육성을 통해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려는 필리핀의 입장에선 반도체 산업이 욕심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세계 반도체 조립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아남이 필리핀에 투자할 경우 "쌍수"를 들어 반길게 분명하다. 투자에 이런저러 우대조건이 따라붙을 것도 불문가지. 아남의 계산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아남은 반도체 공장 부지선정과 공장 운영에 대해 적지않은 "우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번째는 김주진 아남그룹회장과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관계. 김회장은 매년 필리핀 말라카궁을 방문해 아남의 투자문제를 논의하고 필리핀의 경제정책에 자문을 해줄 정도로 라모스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아남이 현지 통신시장 진출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김회장과 라모스 대통령의 "각별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세번째로 아남은 필리핀이 영어권이고 아남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의 무역거래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필리핀은 낮은 임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동남아 국가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적의 투자지역"(황인길 아남산업사장)이라는 것. 정밀공정을 거쳐야 하는 반도체 생산에선 종업원의 팀웍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관리자와 종업원간에 항상 대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어야 한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대화하기가 사실상 불가능 한데 필리핀에서는 적어도 그런 걱정은 하지않아도 된다고 아남관계자는 말한다. 아남은 지금까지 쏟아넣은 8억달러를 포함, 오는 2000년까지 모두 14억달러를 필리핀 반도체 건설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 지역을 발판으로 세계 반도체 조립산업의 "왕좌"를 지키겠다는 아남의 "필리핀 구상"이 어떤 성과를 거둘 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