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건설업계] (중) 무엇이 문제인가..환경변화 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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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종은 흔히 "자전거"에 비유된다.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주지 않으면 얼마가지 못해 넘어지듯 건설업종도 계속새 공사를 벌이지 않으면 결국 쓰러지고 만다. 업체마다 적지않은 금융비용을 감수하면서 땅을 사들이고 안팔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을 짓는다. 관급공사에 덤핑입찰하며 가구당 1억원씩의 이주보상비를 주고 재개발사업을 따내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건설업의 이런 속성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자금압박의 결적정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건설업계의 자금난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분당등 수도권 5개 신도시개발이 시작되면서 건설경기가 본격적인 상승곡선을 그리던 지난 89년부터 예고됐다. 신도시개발로 일시에 건설시장에 집중됐던 시중자금이 지난 91년 9월부터 분당신도시 입주와함께 주식등으로 분산됐다. 또 집값이 떨어지면서 중도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게되자 업계의 자금난은 현실로 드러났다. 자금난속에서도 업계는 속성상 무리하게 은행돈을 끌어다 선분양방식으로 토지를 사들이고 주택을 신규공급했다. 그 결과 대규모 미분양사태가 발생하고 금융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당시 건설업계는 여러 방식으로 자금경색을 호소했다. 그러나 주관 부처인 당시 건설부마저 "부도난 건설업체가 어디 있느냐"며 업계가 꾀병을 부리는 것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우성의 경우도 지난 91년말부터 부동산경기가 한풀 꺽이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선분양받은 택지에 돈이 잠기고 미분양되는 아파트가 늘어나 자금은 더욱 경색됐다. 지난해엔 삼익과 유원건설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금융기관마다 대출금상환을재촉함에 따라 땅을 갖고도 부도위기에 시달렸다. 게다가 툭하면 악성루머가 나돌아 자금흐름에 차질을 빚어왔다. 문제는 다른 기업들이라고 해서 우성의 경우와 다를바가 별로 없다는데 있다. 정부의 주먹구구식 정책과 대안부재, 업계 스스로의 경영전략부재가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을 오늘날 빈사지경에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우선 급격한 환경변화로 미분양아파트가 누적되고 수주를 둘러싼 출혈경쟁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악성루머까지 가세, 자금운용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있는데도 정부는 수수방관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미분양아파트 적체로 사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지난해 11월 정부는 미분양아파트 매입자에 대한 금융 세제지원등을 골자로한 "주택시장안정화 대책"을 내놓았으나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이 조치는 거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종의 특수상황을 무시한 "탁상공론"식 정책도 마찬가지. 최근 SOC시설투자 업체에 대해 외국 금융기관으로부터 현금차관을 끌어다 쓸 수 있게한다는 발상이 그런 사례다. 건설업종의 차입금의존도(상장사기준)는 지난 94년 기준 56.2%,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금융비용도 6.1%로 고무 제지업에 이어 가장 높다. 업계의 부채비율은 평균 4백50%에 달해 국내은행도 건설업체에 돈주기를 꺼리는 형편에 외국금융기관이 무엇을 보고 돈을 대주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토지공개념, 주택전산화의 시행, 토지거래 허가지역 확대, 1가구 2주택에 대한 규제강화등으로 주택등 부동산경기가 얼어붙고 전세값은 가파르게 오르는데 반해 새로 지은 택은 팔리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도 간과했다. 정부는 주택거래가격이 안정된데에만 만족하고 있었을 뿐 자금난은 도외시한 책임이 크다. 결국 건설교통부는 과거 말뚝만 박아도 아파트가 경쟁적으로 팔렸던 선순환시절의 뒤떨어진 사고방식에 안주함으로써 악순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실기했다는 것이다. 특히 증권가의 악성루머는 건설업체들에 실제로 심각한 피래를 입히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억제하지 못했다. 오히려 섣불리 손댔다가 악성루머를 기정사실화해 업계의 자금난을 부추긴축면도 있다. 물론 최근 건설업체들이 있다른 부도사태를 맞고있는 일차적인 책임을 건설업계 스스로 기업환경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데 있다. 우성만하더라도 갈수록 미분양아파트가 쌓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리석을정도로 주택건설사업에만 매달렸다. 경영요건은 급속히 변하는데도 효율적인 대응을 위한 변신에 실패함으로써 스스로 회복불능의 무덤을 판 것이다. 이에따라 건설업종사자뿐 아니라 관계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부동산및 건설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 대규모 수술을 해야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