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경관의 병기화

경찰이란 원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과 진압 수사,공공질서의 유지를 위해 생겨난 공직이다. 경찰관은 그 일부를 수행하는데 총기 곤봉 최루탄 안정침등을 보조수단으로 사용한다. 그 도구들 가운데 총기야말로 도덕적인 보조수단이다. 곧 일반시민들에게 공간의 도구라는 얘기다. 경찰관의 활약상을 그린 미국 영화를 보면 의례히 총기 사용 장면이 등장한다. 끔직하기 짝이없는 인명살상이 거리낌없이 행해진다. 경찰관의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합법성을 부여한 살상행위를 하는 것일뿐이다. 무법천지나 다름없었던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는 보안관이 정의수호의 사도로서 무법자들을 마구 단죄한다. 국가의 치안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런대로 수긍이 간다. 그런데 경찰제도가 확고히 뿌리를 내린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영화에 나오는 경찰관들, 특히 강력범죄를 다루는 형사의 이미지는 서부개척시대의 그것을 뛰어 넘고도 남는다. 근년에 들어 만들어진 영화들에서는 경찰관이 마치 살인병기가 되어버린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많다. 성냥개비 하나만을 입에 물고 사격솜씨를 자랑하듯 범죄자들을 처단하는"코브라"의 실베스터 스탤론, 색시한 이미지를 화약냄새속에 묻어버리는"노워시"의 리차르 기어, 물불을 가리지않고 범죄자들을 마구 사살하는 "리셀 웨폰"의 멜 깁슨.. 일반시민들의 총기휴대가 합법화되어 있는 미국과 같은 상황에서나있음직한 경찰상이다. 1929년 세계최초로 현대적 경찰제도를 탄생시킨이후 곤봉 한가지만으로 임무를 수행해 오고 있는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상상해 볼수도 없는 일이다. 경찰청이 최근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살인 납치 조직폭력등 강력범죄에 실탄을 사용해 적극 대처하라고 했다고한다. 그런데 이 조치에는 어떠한 상황의 강력범죄 발생에 치명적인 총기 사용을허용하느냐의 세부지침이 없다. 사건발생 현장에 있는 경찰관의 상황판단에 총기사용이 맡겨진다면 강력범죄에만 국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심스러운 것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장기민족국가에서 강력범죄자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사살하겠다는 치안책임자의 시대역행적 발상이다. 미국 영화에서나 봄직한 "경찰관의 살인병기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경찰관이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치안을 유지할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니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것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