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지역난방 시대] (7.끝) 미국 .. "효율/경제적" 공감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의 심장부 맨하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타임스퀘어로 유명한 맨하탄을 겨울에 찾는다면"희한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시내 도로의 맨홀 뚜껑 틈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바로 그것이다. 쌀쌀한 날씨면 여지없이 맨홀에선 흰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이 맨홀의 허연 수증기는 맨하탄의 겨울을 상징하는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수증기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뉴요커는 의외로 많지 않다. 수수께끼의 해답은 유엔본부 길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워터사이드 발전소에 숨어 있다. 미국의 최대 지역난방회사인 콘 에디슨사가 운영하고 있는 워터사이드는 맨하탄의 빌딩들에 난방용 스팀을 공급해주는 발전소. 이 발전소를 포함해 맨하탄엔 모두 6개의 지역난방용 발전소가 있다. 이들은 전기와 함께 스팀을 생산해 주변지역의 빌딩에 난방열을 공급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물론 세계에서 2번째로 높다는 월드트레이드센터 등 1천9백여개의 빌딩과 아파트가 이 스팀을 공급받고 있다. 맨하탄의 맨홀 수증기는 바로 이 스팀 배관망에서 새오고 있는 것이다. "맨하탄 맨홀의 수증기"는 미국 지역난방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의 심장부를 따뜻하게 덥혀주는중책을 맡고 있다. 워터사이드처럼 발전소가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듯 미국의 지역난방은 미국인들의 생활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물론 미국의 지역난방은 역사에 비해 보급률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 미국은 지난 1880년대부터 뉴욕등에서 지역난방을 시작했다. 역사가 1백년이 넘었다. 그러나 현재 지역난방 보급률은 1.4%에 그친다. 여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건 석유와 가스가격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엄청난 시설투자가 필요한 지역난방보다 석유나 가스로 개별난방을 하는게 오히려 싸게 먹힌다. 굳이 지역난방을 할 필요성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미국은 땅덩이가 넓은 탓에 주택이나 건물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 드물다. 한국과 같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없는 건 물론이다. 수요자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만큼 지역난방의 메리트가 그만큼 적다. 그래서 미국의 지역난방은 주로 대학캠퍼스나 병원 군부대등 비교적 건물들이 모여있는 소규모 단지에서 애용하고 있다. 실제로 대학 병원 군부대가 전체 지역난방 수요의 60%를 넘는다. 아파트등 주거시설은 20%에도 못미친다. 한국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지역난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지역냉난방협회의 존 피겔 사무총장은 "지난해의 경우 미연방정부로부터 지역난방 사업과 관련해 지원받은 돈은5천달러뿐"이라며 "미국정부는 지역난방 기술개발 등에도 냉담하다"고불만을 토로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지역난방이 영 내리막 길인 것은 아니다. 미미하지만 보급률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다 전망도 밝다는게 대체적인시각이다. 지역난방이 장기적으론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깔려 있어서다. 미국 에너지성의 지역난방정책 책임자인 플로이드 콜린스씨는 "현재는 지역난방이 비용 측면에서 큰 메리트가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방안"이라며 "특히 환경적 이익을 따진다면 앞으로 적극 보급해야 할 난방시스템"이라고 밝혔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정부는 금융혜택등 직접적인 지원은 아니지만 인식개선노력 등 간적적인 후원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콜린스씨는 강조했다. 게다가 미국 지역난방 업체들의 철저한 환경의식과 서비스 정신을 통한"고객 만족"전략은 미국 지역난방의 앞날을 더욱 밝게 해주고 있다. 엄격한 공해배출규제 준수로 지역난방 발전소에선 어떤 연료를 쓰더라도 시비거리가 되지 않는다. 맨하탄의 한 지역난방 발전소가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옆건물로 날라가지 않도록 바람이 부는 날엔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있는 것은서비스의 질을 가늠케 한다. 어쨌든 미국의 지역난방은 정부의 "무지원"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국제지역냉난방협회의 한 관계자는 "에너지나 환경관련 정책결정자들은 아직 지역난방에 무관심하지만 그들이 근무하고 있는 연방정부 사무실엔 대부분 지역난방이 들어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워싱턴 DC에만 발전소등 6개의 지역난방 시스템이 가동중이며 백악관은 물론 국방성 국회의사당등 1백여개의 정부관련 건물이 지역난방의혜택을 받고 있는게 현실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