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중기인들 마음의 병 .. 이나미

이나미 우성건설 부도로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이 1천여개라고 하니 그에 딸린 식솔들의 고초를 생각하면 가슴이 멍멍해진다. 손해를 본 환자들의 속사정을 임상에서 직접 듣는 기회가 많아 그 아픔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2~3년전부터 기업의 도산과 중간관리자 감축등으로 인한 충격으로 40~50대 가장과 그 부인들이 정신과를 찾는 빈도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정신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갑작스런 사업실패로 인해 난데없이 병을 얻게된 셈이다. 늘 정신적으로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나는 이럴때 함께 괴로워진다. "중소기업청을 만든다""종합대책을 세운다"라고 법석을 떠는 것도 괜히 보기싫은 건 그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때는 무얼 하고 있다가왜 이제서야 생색을 내는가 하는 원망 때문이다. 나라일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주제넘게 말할 처지도 아닌 것같아 그저 날 찾아온 사람들이나 도울 뿐이지만 근본처방은 아니기에 스스로 크게 부족한듯 하다. 도식적인 치료법에 불과하지만 회사의 파산이나 실업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빨리 극복할수 있도록 돕는 원칙이 몇가지 있기는하다. 첫째, 큰 실패를 겪을수록 잃은 것보다 현재 남아있는 자원들을 꼼꼼히챙기고 잘 관리해야 한다. 사업을 하다보면 마치 노름판에서처럼 수중에서 나간 돈에만 집착하고 남아있는 돈 관리에는 소홀하기 쉽다. 이러다보면 손해만 더 늘어날 뿐이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둘째, 유형의 재산뿐만 아니라 무형의 재산도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무형의 재산으로 자신의 건강 능력 패기 경험, 또 가족간의 사랑이 있을 것이다. 괴롭고 외로울수록 주변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자.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이 평안해지고 새로운 힘도 생긴다. 비록 파산했지만 건강한 정신과 몸만 있으면 다시 재기할수 있다는 사실을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인정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모든 잘못이 다 내게 있으니 일을 혼자 처리해 보겠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물론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유아적인 발상이지만 무조건 자책하고 자학하는 것도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또 바깥 일은 집안에 끌어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모든 일을 비밀로 하고 혼자 해결하려 애쓰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고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것이 현명하다. 사기를 치며 감옥에 가는 것을 쉽게 여기는 이들은 경제적인 의무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서 그런지 정신건강은 오히려 나은 편이다. 제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양심적인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고는 못사는 사람들, 빚이 한푼이라도 있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착한 이들이다. 사업이란 남의 호주머니에 있던 돈을 꺼내 자기 주머니에 넣는 일이니 이런 사람들은 애당초 사업체질이 아닌 듯도 하다. 이 참에 건강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기업의 생리, 뒷거래 없이는 일이되지 않는 관행들,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나 높은 은행문턱 등등 산재한 악조건들이 개선돼 전화위복의 계기가 오면 좋겠다. 그저 내집 살림처럼 알뜰하고 깨끗하게 경제가 운영된다면 중소기업인들의 정신과 방문이 조금 뜸해지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