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 관련 획기적 사료, 원석초기탁본 연구서 나왔다

광개토대왕 연구의 획기적 자료로 평가되는 원석초기탁본 (석회칠로 변조하여 탁본을 떠내기 이전 능비 본래의 탁본)에 대한 연구서가 나왔다. 동국대 임기중 교수(58)가 93년 중국 북경대도서관선본실에서 찾아내 국내 학계에 처음 소개했던 원석탁본을 2년간의 연구끝에 석문과 현대어역을 붙여 정리, "광개토왕비 원석초기탁본 집성"을 펴낸 것 (동국대출판부 간). 총 6편으로 구성된 이책의 제1편에는 저자가 발견한 6종의 원석탁본중비교적 전거가 확실하고 초기탁본으로 여겨지는 4종이 실렸는데 사진과 원문이 모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광개토왕 연구는 일본 무전행남 교수가 88년 펴낸 "광개토왕비원석탁본집성"에 의존해왔으나 거기에는 완본이 2종뿐이고 전거 또한 불분명한 것이 많았다. 이책의 출간은 그동안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던 원석초기탁본을 우리손으로 찾아내고 그 내용을 밝혀냄으로써 앞으로 우리민족이 이 분야 연구에 주도권을 확보할수 있는 청신호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이책은 광개토왕 연구에 있어 한.중.일.북한의 학계가 기초자료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이책에는 또 중국의 유승간이 석문작성시 참고했던 것으로 보이는 "석치가묵탁본", 조규휴의 "고구려 호태왕비 집성" 등 미공개 자료가 상당수 포함됐다. 저자는 이같은 미공개 자료와 원석초기탁본을 바탕으로 비문에 새겨진 177자를 새로 읽어내거나 재해석 했다. 이는 비문의 총 글자수 1,775자의 10%에 해당되는 것으로 지난 100여년간 관련학자들이 해독하려 노력했으나 정확하게 읽지 못했던 것들이다. 임교수는 또 "진고려호태왕비 이용정탁정지본"의 제1면 7쨋줄 14번째 글자를 "사"로 읽고 다음자를 "망"으로 해독했다. 그는 또 일본학자들이 "해"로 읽어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며 정한론의 근거로 내세웠던 9행 13번 글자를 "사"로 판독, "왜가 사물(사수, 경남 사천)을 건넜기 때문에 고구려가왜를 쳐부수었다"고 해석했다. 그런가하면 비문의 대주류왕은 고구려 제3대왕이 아니라 제2대 유류왕이라고 밝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착오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당시 주와 유의 음이 같았으며 세계 연결로 볼때 그가 2대왕이어야 광개토왕이 제19대왕으로 확인된다는 주장이다. 정병삼 숙명여대 교수는 "내용해석에 대해서는 학술적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원석초기탁본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이라며 "이번 책출간을 계기로 관련분야의 연구영역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