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업인] 길버트 아멜리오 <미 애플컴퓨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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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가는 애플컴퓨터가 비장의 카드로 선택한 인물" 지난 2일 애플컴퓨터의 새로운 최고경영인(CEO)으로 선임된 길버트 아멜리오사장(52)을 두고 미국 언론들이 쓴 표현이다. 당연한 수식어구다. 애플은 지난해 4.4분기에 6,9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1월중순 발표했을 때부터 회생불능의 난파선으로 비유됐다. 난파지경에까지 이르게된데는 선장의 잘못이 큰 만큼 선장의 교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 수순대로 선장이 전격 교체되긴 했으나 새 선장이 위기를 제대로 헤쳐나갈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애플이 외부의 구제없이 자력갱생의 길을 걷는다면 이번이 마지막 카드인 것만은 분명하다. 애플의 창업주인 마이크 마크큘라회장도 아멜리오를 CEO로 지명한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선마이크로시스템에 매각하기 보다 독자적으로 경영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꺼져가는 애플신화를 되살려야할 아멜리오는 사실 미재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미언론들도 애플의 CEO교체와 그 배경에 대해선 대대적으로 떠들었으나 새로운 CEO가 어떤 사람인지는 상세히 알리지 않았다. 지난 91년부터 최근까지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CEO를 맡았다는 정도만 보도했다. 업계관계자들은 내셔널 세미컨덕터가 91년 파산위기에 놓였다가 지난해 24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으로 아멜리오의 능력을 미루어 짐작했을 뿐이다. 아멜리오의 업적은 엉뚱하게도 요즘 출판계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미출판가에서 소리소문없이 베스트셀러대열에 올랐던 "경험의 혜택( Profit From Experience )"이란 책이 바로 아멜리오의 작품이다. 아멜리오는 10년전부터 작가 빌 사이몬과 함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경영철학서적을 집필해왔다고 한다. 출판평론가들은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인텔의 앤드루 그로버가 쓴 책보다도 아멜리오의 저서를 더 높이 평가한다. 빌 게이츠의 책은 내용보다 저자의 화려한 이력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됐으나 "경험의 혜택"은 알차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내용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뉴욕태생인 아멜리오는 록웰 커뮤니케이션시스템부터 내셔널 세미컨덕터까지 실리콘 밸리의 여러기업을 옮겨다니며 경영개선에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경영권을 넘겨받을 때에도 종업원의 약3분의1을 해임하고 14개공장을 폐쇄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이끌어냈다. 한편으로는 조직구성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해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완전히 회생시켰다. 살벌한 구조조정의 과정에서도 아멜리오 주변에는 항상 뒤따르는 사람이많아 "덕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조직이 변하려면 모든 조직구성원들이 변화에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애플이 아멜리오를 끌어당긴 것도 그의 이런 경력 때문이다. 애플은 1,300여명의 인력삭감을 뼈대로한 대규모 구조조정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디젤엔진"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전임CEO 마이클 스핀들러가 이 작업을 이끈다면 적지않은 진통이 뒤따를 것이라고 애플의 이사들은 밝혔다. 진통을 최소화하려면 조직구성원들로부터 자발적인 개혁의지를 북돋울 수 있는 CEO를 구해야했다. 그래서 그 적임자로 결국 아멜리오를 선택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