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4일자)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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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이면 이른 봄기운이 느껴질 법도 하건만 본격적으로 임금 줄다리기를 시작해야 하는 경영계와 노동계로서는 봄기운을 느낄 여유가 없는 것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올해의 노사협상은 4월 총선과 맞물려 있어 그 어느때보다 어수선하고바깥 바람을 많이 타지 않을까 지레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임금인상률에 관해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노-경총이 이미 제각각의 인상안을 내놓았기 때문에 중앙 노사단일안 제시는 사실상 물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노-경총 안이 모두 작년보다 다소 낮아진 인상률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노총의 12.2%(민노총 14.8%)와 경총의 4.8% 사이에는 무려 7.4%포인트 (민노총 10.0%포인트)의 큰 격차가 있어 이를 무슨 수로 메울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수 없다. 이처럼 상황이 어렵게 되어가자 정부는 내주중 노사 양측의 안을 절충하여독자적인 임금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는 방침아래 관련단체와 협의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들리는 바로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총선을 의식한 때문인지 중앙 노사협의회의 공익위원회가 제시한 6.6%보다 높게 책정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작년의 경우 정부가 공익위원회의 인상안을 그대로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채택했던 것으로 보아 다소 의외라 하지 않을수 없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정부에 다음 몇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만에 하나 선거등 정치적 요인에 좌우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지금 경영계에서는 작년의 기업 순수 생산성증가율이나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경총이 제시한 4.8%도 너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해 임금을 작년의 물가상승률 4.7% 만큼만 올린다 해도 호봉승급,성과급및 수당인상효과 등을 따져보면 총액기준 인상수준은 10% 안팎에 이르게 된다. 지금과 같이 두자리 수의 임금인상이 계속되는 추세에서 정치적 배려까지 끼어든다면 경기하강기의 기업은 설 땅을 잃게 된다. 둘째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꼭 있어야만 하는가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노-경총의 임금요구 격차가 심해 적정수준의 준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정부 개입으로 비쳐져 오히려 단위사업장 노조의 거부감만 사고 있는 현실을 무시해선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노-경총 외에 공익위원회 민노총 등이 제각각 인상안을 내놓고 있는 마당에 정부까지 끼어든다면 사업장 노사협상에 오히려 혼란만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임금문제보다 노동관계 법개정이나 고용보장 등의 제도개선 쪽에 보다 많은 신경을 써주길 당부한다. 오늘날의 노사관계에서는 제도개혁을 통한 노동환경의 개선이 임금 못지 않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언제까지나 임금문제에만 매달려 노동환경개선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노사관계의 선진화는 요원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