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임금협상 사후배분제 전환 바람직..허식 <교수>

허식 지난달 8일 중앙노사협의회에서 학술전문가로 구성된 공익위원들이 제시한적정임금 인상률(5.1%-8.1%)에 대해 노총이 수용을 거부함으로써 올 임금가이드 라인 설정이 무산됐다. 이에 따라 지난달 31일에는 노총측이 12.2%(민주노총은 14.8%), 지난 8일에는 경총측이 4.8%의 인상안을 각각 제시했다. 양측의 인상안 격차는 7.4%로 나타나 올해 단위 사업장 임금협상은 상당한진통이 예상된다. 협상대상인 임금은 경제주체가 보는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인식될 수 있다. 흔히 사용자 측면에서 임금은 생산비용으로 간주되고 근로자 측면에서는 생계수단을 위한 소득으로 파악된다. 이런 노사간의 입장차이로 인해 매년 임금 교섭때마다 단일 임금협상안을 끌어 내는데 상당한 교섭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한편 근로자가 받는 임금을 시차를 두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사전배분적 임금과 사후배분적 임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국민경제및 기업의 여건을 기초로 하여 올해 받게 되는 고정된(협약된) 근로자의 몫이다. 후자는 기업의 성과에 따라 다음번 임금협상전까지 받게 될 변동 가능한 근로자의 몫에 해당된다. 임금교섭을 벌일때 사전배분적 임금에만 관심을 두게 되면 사용자와 노동자는 자신의 몫에 집착하게 된다. 협상의 타협점을 찾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해 진다. 이렇게 되면 노사관계 기반의 안정이나 기업의 성장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전배분적 임금으로써 적정 임금수준은 각 경제주체들이 한 나라에서 기본적인 경제활동을 하기에 필요한 수준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작년부터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임금안이 그 수준을 대변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임금안은 근로자의 생계비와 기업의 지불능력을 반영시켜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산출되기 때문이다. 한편 임금교섭때 사후배분적 임금을 강조하게 되면 노사 양측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수반할 수 있다. 기업의 성과에 따라 사후적으로 배분되는 상황에서는 근로자나 기업주는 기업의 몫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노사간 화합분위기에서 효율적인 기업및 생산활동을 통해 생산성이 증가되고 이는 곧 경쟁력 강화로 인한 기업수입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후적으로 근로자의 소득은 증가하고 근로조건도 개선될 것이다. 또한 사용주도 기업의 성장으로 이득을 보게 된다. 이밖에도 노사관계의 개선으로 자율적인 임금교섭체계가 달성될 뿐아니라 임금의 유연성으로 고용 측면에서도 상당히 안정된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사후배분적 임금의 경제적 외부성은 학계에서 많은 실증적 분석으로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많은 나라에서는 이같은 경제적 외부성을 인식해 기업성과와 연계된 임금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에게 세제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사후배분적 임금을 통해 경제적 외부성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기업내부적으로 여러자기 전제조건이 수반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생산성 향상을 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며 근로자들이 경영정보를 획득하거나 의사결정에 참여할수 있도록 노사협의 채널도 갖춰져야 한다. 또 임금지불 체계도 형평성에 입각한 합리적인 것이어야 한다. 요즘 국내외의 기업환경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런 여건속에서 기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쟁력을 강화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활동의 첫단계인 임금협상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협상은 원활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의 개념을 "노사간에 사전에 얼마나 자신의 몫을 챙기느냐"에서 "노사가 합심하고 노력하여 사후적으로 얼마나 많이 배분받을것인가"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협상 테이블위에는 임금수준뿐만 아니라 근로자 복지와 능력개발도 포함시키는 포괄적인 임금교섭안이 상정돼야 한다. 노사관계는 그렇게 함으로써 선진화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