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장례문화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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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이 살아서 "주택난"에 시달렸다면 죽어선 "묘지난"을 겪게되는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약 20만기의 새 분묘가 발생하므로 여의도(8.5평방킬로미터)보다 넓은 약 9평방킬로미터나 묘지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금년중에 묘지면적이 전국토의 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묘지의 국토잠식은 매장을 선호하는 우리 전통의식에 따른 것으로 화장률이 외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우리의 화장률은 94년말 현재 20.5%를 기록하고 있으나 일본 (97%)태국 (90%) 스위스 (67%) 영국 (60%) 등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셈이다. 우리의 매장선호사상은 고려말과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주자가례"가 수입되면서 본격화 된것 같다. 우리 역사를 보면 그전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한 것을 볼수 있었다. 매장은 국토 잠식뿐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사회지도층의 "호화분묘"로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게 한다. 이같은 현상은 "사후평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심지어 중국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중 하나인 조조는 자신의 죄악을 생각해 사후에 묻힐 무덤을 72분(의총)이나 만들었다 한다. 그는 어느 것이 진총인지 모르게 해서 그의 생전의 죄악을 감추려한 것이다. 우리가 최근 화장을 기피하고 매장을 선호하는 이유의 하나로 유교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들수 있다. 그리스도교도는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육신의 부활"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은 육신의 부활이란 시체 그대로 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가령 사후에 장기를 기증했다면 그는 부활하지 못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기때문이다. 그래서 천주교회에선 화장을 허용하고 있다. 또 분묘중 무연묘가 날로 늘어나는 경향은 우리 전통의 매장문화가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속히 우리의 묘지문화를 매장중심에서 화장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며칠전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이 "납골당을 지어 국가에 헌납할 계획"이라며 "나 자신도 죽으면 화장을 할 것"이라고 말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재벌그룹의 회장이라면 으레 "호화분묘"를 꾸미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기때문이다. 묘지문화의 전환은 우리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이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구회장의 발언은 의의가 크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