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주평] '학생부군신위'..상가모인 인간통해 삶본질 그려

"상가는 잔치집이었다 / 일흔 가호 앞뒤 섬사람들이 / 일당육칠의 전식구를 / 몰고와 4박5일을 지냈다"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는 황지우의 시 "여정"을 제재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한 시골노인의 죽음을 계기로 상가에 모여든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전한다. 망자의 집에서 벌이는 산사람들의 잔치판이라는역설적 상황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박감독이 맏상주이자 영화감독인 큰아들역으로 직접 출연하는 이 영화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 첫째 주연배우가 따로 없다. 등장인물 모두가 가족이자 이웃이다. 이들은 장례식에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젊어서 혼자돼 고생만 한 고모는 제 설움에 겨워 땅을 치고 졸부가 된 이복동생 팔복이도 가슴시린 옛기억때문에 오열한다. 그러나 자기슬픔을 털어낸 고모는 금방 팔을 걷어부치고 문상객들에게 보험가입을 권유하느라 정신이 없다. 기둥서방과 함께 와 난리를 피우는 막내 여동생. 저승길에 수표가 웬말이냐며 "현찰" 노자를 요구하는 동네어른들과 장례식장을 단란주점으로 만들어버린 읍내 로타리다방 레지들도 화려한 주연배우의 몫을 다한다. 둘째는 수직적 화면구조. 한국적 정서와 지형을 고려해 평지보다 산곡이 많은 합천땅을 무대로 삼았다. 이는 공간의 수직화와 등장인물들의 계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치로 비친다. 세번째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왁자한 세상사의 여러 면모를 훑어내는 데는 고정카메라보다 핸드링으로 촬영한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깊이있게 만드는 요소는 가벼운 웃음의 끝에서 뽑아올린 눈물의 미학이다. 시종 웃음을 머금게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코끝이 시큰거리는 감동을 연출해낸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 "저예산 독립영화"의 지평을 한층 넓혀 놓았다. ( 명보 반포 브로드웨이 건영옴니 한일시네마 상영중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