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7일자) 다급해진 조달시장 개방준비

내년부터 최저가낙찰제 적용대상이 지금까지의 공사비 100억원이상 규모의공사에서 55억원 이상으로 확대되는 등 정부조달 제도가 크게 바뀌게 된다. 이밖에도 지역의무 공동도급제및 대규모 기업집단의 공동도급제한등 지방 건설사나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현행제도들의 전면적인 개폐가 불가피할전망이다. 이같은 변화는 우리가 WTO(세계무역기구)의 정부조달 협정에 가입해 내년 1월부터 정부 조달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올해말까지 앞으로도 고치고 다듬어야 할 제도나 법규가 적지 않을 것으로보인다. 따라서 정부는 관련 부처와 단체의 책임자들로 "정부조달제도 국제화추진기획단"을 구성하고 정부 조달협정에 이미 가입한 다른 나라의 제도와 법규를 조사해 반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규나 제도를 고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정부조달시장 규모는 건설공사 7조5,000억원, 각종 물자구매 3조9,000억원 등을 포함해 최소한 1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큰 시장을 외국기업과의 경쟁없이 국내 업체끼리 나눠먹기 식으로 안주해온 타성과 관행이 하루아침에 고쳐지겠느냐가 핵심과제다. 한 예로 조달청이 중소기업 제품을 우선구매하는 단체수의계약 품목을 496개에서 315개로 줄인데 이어 정부 조달물자를 단체수의계약 대신 "단체적경쟁입찰"방식을 통해 구매하려고 하자 중소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조달협정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체수의계약은 예외를 인정받을수있어 통상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없는데 경쟁입찰로 바뀌면 과당경쟁만 유발될 염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시장개방의 목적이 납품계약 과정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시장효율을높이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자는데 있기 때문에 경쟁입찰을 마다할 명분은 없어졌다. 다만 중소기업들이 적응할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물자조달을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기관별로 분산한다든지, 일본의 최고가격제와 같은 방식을 통해충격을 완화시킬수는 있다고 본다. 이같은 논리는 정부발주공사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수 있다. 고질적인 담합과 공무원비리를 뿌리뽑고 해외공공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도외국기업과의 경쟁을 피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내 건설업체의 기술이 부족해 당장은 해외진출에 한계가 있겠지만 합작이나 하청 형태로라도 선진국 시장에서 경험을 쌓는 것은 먼 장래를 위해서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과도기적인 준비기간을 거쳐 적응이 되면 시장효율 향상및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단계적으로 정부 조달시장을 축소하고 민간 조달규모를확대해가야 할 것이다. 세계화와 지방화가 함께 추진되면서 점차 국경의 존재 의미가 축소되는 추세이다. 이같은 추세에 발맞춰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자세가 필요하다. 경쟁력이 약하고 오랫동안 불합리한 타성에 젖어온 우리 기업들로서는 국제입찰방식을 통한 경쟁이 어려운 관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피할수 없는 길이며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