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원삼국

한국고대사처럼 아직 체계화 되지 못한 학문도 없다. 우리는 툭하면 5000년 역사를 내세우지만 사학계에서는 아직 고구려 백제신라의 정립시기조차 4세기 중엽으로 보고 있다. 언제 삼국이 시작됐는지도 불분명 하기때문에 문헌사학자들은 삼국정립이전의 시대를 "삼한시대"니, "부족국가시대" "성읍국가시대"니 하는 개념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용어를 빌어다 쓰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은 한국사에서 서력기원을 전후 한시기를 석기나 쓰는야만인들이 살았던 때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에는 이미 중국에 한제국이 있던 시대다. 고구려의 전사들이 용병으로 한나라 군에 가담했다는 기록도 있다. 압록강 이남지역만이 석기시대에 머물수 있었을까. 30여년전 이런 생각을 제일 먼저 했던 사람이 고고학자 금원용박사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삼국시대 개시연대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충분한 고고학적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고학적 시대구분으로는 청동기시대 다음에 철기시대가 오고 그다음에 역사시대인 삼국시대가 오면 합리적이지만 한국의 출토유물은 청동기단계는있어도 언제부터 철기시대로 들어갔는지가 불분명했다. 도기를 비롯 김해패총유물에 대한 연구결과 그는 "김해시기"를 초기철기단계로 보았다. 문헌사적으로는 "김해시기"는 엄연히 삼국시대에 속해 있고 이미 서기로접어든 시기인데 "철기시대"라는 선사시대의 명칭을 붙이는 것도 "국사의체면상 문제"였다. 또 일반적으로 왕조명이 알려져 있을 때는 왕조명을 쓰는 것이 통례로 돼있어 "청동기"니 "철기니"하는 고고학적 문화단계명을 쓸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낸 것이 "원삼국"이라는 용어다. 삼국시대의 원초기, 원사단계의 삼국시대란 뜻이 포함돼 있는 이 용어는한마디로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전환돼 가는 과도기적인 시기를 뜻한다. 한국사에서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300년께까지 약 300년을 이르는말이다. 경주시 사라리고분군에서 2000년전의 베일을 벗고 원삼국시대의 유물 110여점이 발굴됐다. 신라의 개국 연대와 아울러 삼국의 개국연대를 끌어올릴 수 있는 귀중한자료다. 벌써 30여년전의 논문에서 삼국시대의 시작을 고고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을 때가 올것이라고 믿었던 김원용박사의 꿈이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질 날도 머지 않았다. 경주는 어느곳이든 땅을 파기만 하면 유물이 나오는 지하박물관이다. 이번 원삼국시대유물의 대량출토는 경부고속철도의 경주통과를 막아야 한다는 김박사의 탄원인듯 보이기도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