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법정관리, 채권자 '경영감시 위원회'구성 바람직

이정조 얼마전 법정관리 상태에 있는 기업체가 어음을 불법발행해 유통시킴으로써법정관리제도 전반의 문제점을 다시 노출시켰다. 일단 법정관리 기업으로 지정되면 어음이나 수표발행, 기타 중요한 의사결정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어음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11월에는 법정관리를 받던 의류업체가 끝내 회생을 하지 못하고 결국 부도를 낸 사건도 있었다. 이에 따라 법정관리가 잘못 결정되고 있다던가 법정 관리인을 선정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오고 있다. 사실 법정관리제도는 채권자의 희생을 발판으로 한다. 일정기간 동안 부채를 동결시켜 부실기업을 되살려 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체 도산에 따른 각종 사회적 비용을 극소화하겠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법정관리 기업은 부채상환을 유예받는 대신 매달 어음이나 수표를 발행할 경우 법원으로부터 자금수급 계획에 대한 허가를 미리 받아야 하며 경영감독도 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어음불법 발행이나 법정관리기업의 부도등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회사정리절차, 즉 법정관리제도는 개시때부터 종료때까지 모든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시작단계부터 살펴보자. 채권자등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받긴 하지만 전문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판사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법정관리기업의 회생가능성에 대한 객관성이 결여될 공산이 크다. 법정 관리기업을 경영하는 법정관리인 선임도 투명성이 떨어지고 있다. 경영능력이 있는 외부의 유능한 전문경영인보다는 기존 주주나 최고 경영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내부인사나 얼굴마담격인 원로인사가 선정되는것이 일반적이다. 이같은 문제점들 때문에 법정관리 기업의 회생가능성은 극히 낮은게 사실이다. 또 회생가능성이 없는 기업까지도 법정관리를 수용함으로써 특혜의혹이 심각함은 물론 채권자만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난도 제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중간단계에서도 문제점은 노출된다. 채권자들의 경영감시 장치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판사와 기존주주와 유착관계에 있는 관리인이 경영을 독점,법정관리기업의 경영 투명성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법정관리 기업은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도 강제되지 않아 상당수의 법정관리 기업체가 감사를 받지않고 있다. 법정관리 기업은 채권자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신뢰성이 높은 회계자료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회계자료 공개 자체를 방해하는 시스템이 법정관리 제도내에 존재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법정관리 종료측면에서도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법정관리 기간은 기업이 회생할수 있는 가장 긴 기간을 말한다. 그런데 다른 기업체를 인수할 정도로 기업체가 이미 정상화됐는데도 법정관리가 해지되지 않아 법원과 기존주주 및 경영진의 유착의혹도 제기된다. 이 경우 경영감시를 할수 없는 일반채권자나 금융기관들로서는 부채를 조기에 되돌려 받을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보완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우선 채권자의 경영감시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채권자들은 피해당사자들이기 때문에 관심이 높을수 밖에 없고 현실적으로법원보다는 지식과 경험이 많다. 따라서 채권자 대표 4~5명으로 경영감시위원회를 구성, 이사회처럼 매월 기업의 경영상태를 점검해 변칙적인 경영을 사전에 차단하고 법정관리 기간을 단축할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유일한 피해자인 채권자의 손실도 최소화할수 있을 것이다. 둘째 법정관리기업들이 회계감사를 받도록 강제함으로써 신뢰할수 있는 회계자료가 제출될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법정관리를 시작할 때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이 경우 법정관리 개시여부를 객관적인 회생가능성을 토대로 결정할수 있을 것이다. 넷째 법정관리 종료를 결정하는 때도 채권자를 참여시켜야 한다. H사나 K사의 사례처럼 법정관리 기업이 정상화됐음에도 법정관리 상태를 계속하면 채권자의 피해가 지속되는 폐단이 생긴다. 따라서 채권자들이 경영상태를 감안해 법정관리 해지를 요구할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와함께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한다거나 이자면제 원금탕감등 실질적인 협조금융을 활성화하는 방안등 채권자들이 사후관리를 할수 있는 대체수단도강구돼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