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시론] 국가적 리더쉽 .. 김인철 <성균관대 교수>

김인철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4.11총선은 이제 그 막을 내렸다. 숱한 사연과 문제를 남기고 15대 총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갔다. 이번 총선 결과는 여러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총 투표율은 63.9%로서 사상 최저를 기록하였으며 지역감정의 높은 벽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여러가지 해석이 분분하지만 한가지 공통된 견해는 대부분의 투표자들이 냉정하고 차분했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일은 모든 국민이 하루 빨리 어수선했던 마음을 가다듬고 각자의 정상적인 생활 패턴을 회복하는 것이다. 선거기간동안 정부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따라서 기업활동이 다소 위축되기도 했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후 각국간의 시장경쟁은 매우 치열해졌다. 국내시장을 견고히 하는 한편 상대국 시장을 공략하여 시장점유율을 높이고자 각 나라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나라의 경제는 자전거에 비유될 수 있다. 계속해서 성장하지 않으면 그 경제는 쓰러지고 만다.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은 선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의 최대 목표가 된다. 필자는 최근 세계은행과 유럽의 몇 나라가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발전을 위한 세계 전문가대회"에 다녀왔다. 보츠와나는 남아연방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로서 60년대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무진장하게 매장되어 있는 다이아몬드를 생산해 나라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회의의 주내용은 어떻게 하면 아시아의 발전경험을 살려 아프리카의 경제개발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였다. 세계 어느 지역보다 아시아지역.특히 동아시아지역의 경제가 지난 10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 그러한 추세를 유지할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 회의에서 동아시아 경제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성장하였다고 해서 이들 국가들이 취한 과거 모든 정책이 반드시 옳았다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고 좋은 정책은 도입하되 시행착오는 후발국가들이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전략에 대해 세계 전문가들이 합의를 본 내용은 이러하다. "한나라의 경제발전은 정부가 단독으로 주관할수 없다. 기업과 국민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국가적 리더십이란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리더십을 가리키며 리더십을발휘하는 주체는 대통령 뿐아니라 그 사회의 지도층인 지시인이 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물어봐도 선진국 되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경제는 지난 30년간 꾸준히 성장해 지금은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넘어야 할 큰 장벽이 있다. 선진국일수록 많은 국민이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키워가는 한편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자신의 적성에 따라 가장 하고 싶어하는 분야를 공부할수 있게 부모와 국가가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개성과 다양성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인생 최대 승부를 대학입시, 특히 명문대입시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아직도 전문지식인을 양성하기 보다는 수많은 대입지망생 중에서 입시에 능한 소수 학생들을 뽑아주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국민의 총체적 지력은 대학입시 수준에 머무르고 더이상 뻗어가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 한 국내 명문대학에서 총장의 2중국적을 문제삼아 총장 자격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선진국에서는 대학총장이나 대학교수의 자격에 대해 국적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단지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탁월한 솜씨로 대학을 운영하는 총장을초치하지 못하고 세계 정상급의 학문 업적을 쌓은 교수를 국내 전임교수로 영입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학문은 정체되고 따라서 그 나라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수 없다. 최근 서울대학 특별법 제정을 놓고 내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알수 없지만 앞으로 국립 서울대학이 국내최고 명문대학에 그치지 않고 세계 수준의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교수채용과 대학운영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서울대학이 모범적으로 보여 주었으면 한다. 해외에서 외국인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은 두가지다. 단기간에 고성장을 이룩한 부지런한 국민으로 봐준다. 그러나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우리는 지금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라고 좋아할지 모르나 그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1등국민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지식층과 지도층이 너무나 국수주의적이라고 느낀다. 외국어를 더듬거리고 잘못하는 것을 대단한 애국심의 발로로 여기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밖에 없다고 이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의 외교정책과 통상적책을 크게 신뢰하지 않으려 한다.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시장개방은 미진한채 수출을 계속해야 하는 우리의 실정을 생각하면 선진국과의 통상마찰은 앞으로 계속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통상정책을 포함하여 우리의 대외정책을 지금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외전략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낼수 있게 하고 또 그럼으로써 상대국에 호의적인 제스처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가령 우리 사회에도 이제는 친유럽파 친일파 친미파 등이 생겨나서 이들이어느 정도 목소리를 크게 할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제는 그 정도 허용해 줄 여유는 있다. 또 그래야 우리의 국력이 더욱 커지게 된다. 지난 30여년간 우리는 경제성장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물질적인 풍요도 어느 정도 이룩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장지향적이고 해외지향적인 자세를 우리는 가져야 한다. 편협한 지역감정과 국수주의를 버릴수 있게 우리의 대학과 사회지도층은 국가적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