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좋은 부모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온다. 카인은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데, 성서에는 이 살인의 동기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 유태의 고대 율법학자들도 그것이 의심스러웠든지 연구를 거듭해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해 냈다. "카인"이라는 말은 "갖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데 주목한 그들은 하와가 장남을 "자신이 갖는다"는 것으로 생각해 결국은 살인을 저지르게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독립된 한 인간이 아닌 자신에 종속된 것으로 보았기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유태인 어머니들은 지금도 자식은 신이 자기를 신뢰하고 맡긴 것으로 생각해 철저하게 엄격한 율법에 따라 기른다고 한다. 유교문화권에 속해 있는 한국인들의 자식에 대한 전통적 생각은 유태인과는 좀 다르다. 일찌기 인간이 역사적 존재라는 점을 인식한 한국인들은 자식을 조상과자기의 대를 무궁무진하게 이어갈 계승자로 생각하고 확립된 가부장적 질서아래서 엄하게 교육시켰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중심을 부모 자식간의 수직적 질서에 두었던 한국의전통적 대가족제도의 질서는 이미 무너진지 오래다. 서구식으로 부부간의 수평적질서를 중시하는 핵가족조치 개인주의로 흘러 가족구성원 사이가 더욱 유리되고고립돼 가고 있다. 아이들은 인간미라고는 없는 완전한 온실속에서 길러진다. 자식을 부모소유의 애완동물처럼 사육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미래의 출세를 위한 경쟁에서 무조건 남에게 이기기만을 바라는 부모는 경마장의 마주, 자녀는 경주마와 흡사하다. 자식에 대해 못다한 애정을 돈으로 보상하려는 심리도 작은 문제가 아니다. 수험생에게 부모는 완전히 폭군으로 군림한다. 우먼 리브에 눌린 부권은 맥을 못순다. 결국 "아빠" "엄마"가 살아가기에 정신을 못차리는 동안 자녀들은 제멋대로 웃자라 간다. 외형.물량.획일.금전주의에 물들어 점차 그것의 수단화 되어 가는 학교교육만 믿을 수도 없는 요즘이라서 교육이라 일컫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부모의 자각과 가정교육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에서는 "자녀 비위나 맞추는 가엾은 부모 되지 말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좋은 부모되기운동 본부"가 부모계몽운동에 나섰다. "내 몸은 위로는 천백세 조상의 결론이요, 아래로는 만억대 자손의 발단"이라고 했던 한말의 선비 유중악의 말처럼 부모들이 자존의식을 갖을수 있엇으면 한다. "좋은 부모"는 이런 숭고한 의식속에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