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C 대경쟁시대] (1) .. 현대그룹 기조실장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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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지크(ZIC=21C의 알파베트 표기) 초우량기업"을 공통 화두로 중장기 경영전략 수립에 한창이다. 기존 사업영역을 심화시키는가 하면 유망업종의 포트폴리오에도 나서고 있다. 세계적인 복합 다국적기업을 지향하면서 21세기에 걸맞게 기업경영문화도 바꾸고 있다. "지크 프로젝트"가 활기를 띠면서 대기업그룹들의 기획조정실(또는 비서실.종합기획실)이 부쩍 바빠졌다. 자연히 기조실장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룹 차원의 포괄적인 경영전략을 "기획"하고 일선 계열사간 사업을 "조정"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기조실장은 그룹 총수와의 교감하에 총수의 경영 구상을 일선 계열사들에 접목시키는 "참모장" 역할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 한국경제신문사는 주요 대기업그룹 기조실장과 차례로 만나 "지크 전략"을 듣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 **만난사람 : 유화선 박세용 -보더리스 경제( Boderless economy )가 진전되면서 무한경쟁이란 말이 한참 유행하더니 요즘 들어선 "대경쟁시대"라며 야단들입니다. 현대그룹에선 "대경쟁"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박실장 = 국내기업과의 경쟁을 넘어 세계적인 초일류기업과 경쟁해야 한다는 뜻으로 봅니다. 말하자면 글로벌경쟁, 지구적 경쟁을 대경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는 지구적 경쟁을 어떻게 이겨나갈 작정입니까. 박실장 =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리처드 다베니교수는 그의 저서 "대경쟁"( Mega competition )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죠. 기업이 경쟁우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현상유지 타파 경영전략이 새로운 행동지침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요. 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상타파전략이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습니까. 박실장 = 있습니다. 얼마전 기술의 날을 선포하고 기술상제도를 만들었습니다만 현대그룹의 현상타파 전략은 기술중시경영 그 자체를 뜻합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독자기술을 갖지 않고선 대경쟁시대를 살아가기가 힘들지요. -현대의 업종은 중후장대형 산업이 많습니다. 이들 산업의 기술은 주로 에너지혁신형 기술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그랬다해도 대경쟁시대엔 이런기술만으로 승부를 내기가 힘들다고 봅니다만. 박실장 = 잘 지적하셨습니다.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중후장대형 산업의 발전을 가져온것은 육체노동 대체 기술이었습니다. 매크로기술이었지요. 그러나 이런 기술만으로는 지구적인 경쟁을 펼치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때문에 현대는 신소재와 반도체 정보통신등 정보혁신형 기술개발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굳이 용어를 만들자면 뇌-신경대체형 기술을 본격화할 것이란 얘기죠. 21세기 신산업 유망산업을 좇아가고 리드하려면 마이크로기술 개발에 힘쓸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마따나 신산업 유망산업을 좇고 리드하려면 업종포트폴리오 전략도 매우 중요할 것 같은 데요. 박실장 = 크게 세가지분야 업종으로 나누어 그룹의 경영자원을 집중시킬 것입니다. 첫째는 정보통신 메커트로닉스기술 신소재 등과 같은 미래 핵심사업에 주력하고, 둘째는 현재 그룹이 갖고 있는 업종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우주항공 해양사업과 신소재 정보통신 등에 적극 진출할 계획입니다. 그 다음으로 다른 그룹에 비해 낙후된 금융분야의 덩치를 키울 계획이지요. 이들 전략은 물론 기존의 중후장대사업의 고부가가치형 전환과 병행해 추진될 것입니다. -유사업종의 통폐합같은 것도 고려하고 있을 법 한데요. 자동차와 정공, 석유화학과 정유, 건설과 산업개발 고려산업개발 등은 한 회사로 묶으면 시너지효과가 대단하지 않겠습니까. 박실장 =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업종이 비슷하더라도 계열사들마다 주력하는 사업에 특수성이 있거든요. 계열사간 내부경쟁에 따른 합리화 효과가 시너지효과보다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현대가 적극 진출하겠다는 우주항공 제철사업 등을 중후장대형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대경쟁을 하는 데 불리한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중후장대산업은 속성상 숙련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숙련노동자는 장기근속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경쟁에 걸림돌이 될 수 있겠지요. 박실장 = 옳은 지적입니다. 그러나 이들 산업도 인건비 상승보다 생산성 향상이 높으면 경쟁력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속적인 투자와 인재양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대경쟁시대에는 그룹문화도 한번 바꿔 봄직한데요. 밖에서는 현대를 "거칠고 강하고 저돌적"이라고들 합니다. 21세기 소프트사회에선 이런 근육질형 문화가 먹혀들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있지요. 박실장 =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현대문화를 오히려 벤치마킹하는 사례를 봐도 그렇고요. 현대그룹의 문화는 확실히 "강점"이 있습니다. 밖에서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강점보다는 약점이 너무 비쳐졌기 때문일 겁니다. -바로 그렇게 비쳐지는 게 문제아닙니까. 박실장 = 그룹이 영위하는 업종 가운데 소비자밀착형 사업이 별로 없다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딱딱한 사람도 알고보면 부드러운 사람이 많듯이 현대문화도 알고보면 정감있고 구수합니다. 앞으로 현대문화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차별화된 홍보에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새로운 그룹이미지는 "문화.환경친화적"으로 바꾸는 게 목표라면 목표지요. -문화.환경친화적 기업과 정몽구회장 취임이후 새 경영이념으로 내세운 "가치경영"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박실장 = 21세기엔 기업의 경쟁력이 단순히 상품의 질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의 품질에 의해 좌우된다는 게 정회장 생각입니다. 소비자에게 물건만 파는 행위만이 아니라 종업원, 더 나아가 지역주민,국민전체, 인류를 위한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게 가치경영의 참된 뜻입니다. 이런 가치는 지역개발사업 참여나 문화활동 지원, 환경보호적 생산활동 등 "공동선"을 추구할 때 더욱 높아지지 않습니까. -기업이미지를 가꾸는 데는 경영인들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는 "벌거벗은 임금님 증후군"을 앓는 경영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박실장 = 다 옛날 얘깁니다. 시대에 따라 경영자의 리더십도 바뀌는 것이니까요. 과거처럼 독선적인 리더십은 요즘과 같은 정보화시대엔 통하지 않아요. 이젠 조직내 누구하고도 직접 대화채널을 가질 수 있는 "열린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컴퓨터 결재를 하다보면 집무실 컴퓨터를 통해 말단 사원과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노사분규가 많았던 것도 현대문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박실장 = 그런 점도 있겠지요. 그러나 작년부터는 "노사불이"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물론 올해는 대부분 제조계열사들이 임금 및 단체협상을 동시에 하게 돼 협상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신임 회장이 노사화합에 신경을 쓰고 있어 잘 풀리리라 기대합니다. 열린 경영을 하려면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사외이사제는 어떻습니까. 재계에선 현대가 처음으로 일부계열사에 사외이사들을 위촉한 데 대해 관심이 큽니다. 우리 현실에 잘 맞던가요. 박실장 = 사외이사들은 매달 한번씩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합니다. 투명경영을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외의 부수적 효과도 많습니다. 사외이사들이 신규사업등에 대해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해 주거든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외부의 눈"으로 경영을 챙겨준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정상에 올라서면 이미 "쇠퇴의 씨앗"이 움튼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기업병같은 것 말입니다. 정상에 오른 현대도 예외가 아니겠지요. "현대그룹병"은 무엇이라고 진단합니까. 박실장 = 혹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일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기업병은 거기서 출발한다고들 말하니까요. -특별한 대책이라도.. 박실장 = 자율경영이 착근되도록 가급적 책임과 권한을 하부로 이양하고 있습니다. 사장들은 임원들에게, 임원들은 또 그 아래로.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조직 자체도 기존의 부.과제도에서 팀제로 바꾸고 있지요. 현대종합상사의 경우 팀을 82개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에서도 팀제를 활성화하고 있는데 모든 계열사로 확대시킬 계획입니다. 젊은 사람에게 팀장을 맡겨 전결권을 주니까 신바람이 나는 모양입디다.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구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면서 느낀 점도 많을 텐데요. 두분은 공통점 뿐만 아니라 차이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박실장 = 흔히들 창업자와 2세 총수는 다른 점이 많다고 하지요. 그러나 두분은 비슷한 점이 오히려 많습니다. 특히 판단력이 정확하고 결단이 빠르다는 점에서는 똑 같습니다. 정회장은 한가지 사안을 놓고 깊고도 넓게 생각합니다. 그것도 그냥 머릿속 구상이 아니라 거의가 실현 가능하게 말입니다. 창업주의 기업가적 기질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듯 해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