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신조류 경영 새흐름] "반도체, 먹구름 걷힌다"
입력
수정
반도체 시장의 기상도가 "흐림"에서 "맑음"으로 바뀌고 있다. 반도체 가격의 급락과 주수요처인 PC(개인용 컴퓨터)업체들의 재고증가 등 잔뜩 끼었던 먹구름이 2.4분기 들어서면서 서서히 개고 있는 것. 반도체 업체들도 이에 발맞춰 고속 메모리 반도체 양산을 서두르는 등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있 다. 한마디로 "좋은 시절은 끝났다"고까지 번졌던 우려가 비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주요 반도체 업체의 최근 주가 동향에서 잘 나타난다. 세계 반도체 경기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미인텔사의 장외시장(NASDAQ)주가는 지난달 26일 현재 70달러로 한달 전보다 25.2%나 올랐다. 가격하락의 돌풍이 거셌던 지난 1월(50달러)에 비해서는 30%이상 뛰어올랐다. 인텔 뿐 아니다. 텍사스 인스투르먼츠사의 주가도 지난달 26일 현재 59달러로 한달전 보다 17.4% 올랐다. 삼성전자의 주가도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7만원을 넘어섰다가 올초 7만원대까지 밀렸던 주가가 지난달 말부터 10만원선을 넘어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처럼 주가가 재상승의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올 1.4분기 영업실적이 호조를 보인 덕분이다. 예컨대 인텔의 올 1.4분기 매출은 46억4천4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 늘어났다. 순이익도 8억9천4백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0.5% 증가했다. 인텔의 영업실적 호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인텔의 주력 상품은 컴퓨터용 CPU(중앙처리장치)다. CPU가 많이 팔린다는 것은 그만큼 컴퓨터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컴퓨터 시장의 매기가 살아나고 메모리반도체의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올 1.4분기 매출이 2조원을 웃돌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가량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영업실적의 호전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업체들의 영업실적이 3월들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한마디로 최근 몇달간 줄곧 내림세를 보이던 반도체 경기 지표가 다시 "우상향" 곡선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세계 반도체 시장 가격동향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 연말부터 급락세를 보이던 16메가D램의 세계 현물가격이 지난 3월 중순을 기점으로 개당 30달러선에서 안정을 되찾고 있다. "너무 짧은 기간동안 값이 많이 내려간 것은 사실이지만 연초와 같은 급락세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삼성전자 메모리 영업담당 최지성상무)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이같은 현상은 반도체 경기 하락을 부추겼던 PC업체들의 재고정리가 끝나면서 신규수요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16메가D램의 경우 연말가격이 당초 예상했던 개당 28달러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전자산업진흥회 이상원부회장)되고 있다. 그러나 불황이 끝난다 해도 작년과 같은 공전의 호황을 누릴 수 있을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반도체 시장 구조가 작년과는 다른 양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수요업체들이 보다 고속화된 메모리반도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 반도체 시장 전문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는 "FP( Fast Page )"로 불리는 일반 D램이 시장을 독점하던 시대는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94년에 91.4%를 차지했던 일반D램의 세계 시장규모가 오는 99년에는 불과 2.6%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신 EDO( Extended Data Out )D램이나 싱크로너스 D램 램버스 D램등 고속형 제품이 이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고속형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업체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업계가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겠지만 올 연말부터는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가 아닌 "기술생존시대"로 본격 접어들 것"(반도체산업협회 김치락부회장)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업체들이 그동안 만성적인 수요초과에 힘입어 "땅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영업하던 체질에서 환골탈태해 "기술"로 새롭게 무장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