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가재와 게 .. 송숙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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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인당 GNP는 1만35달러라고 한다. 정치체제 안정순위는 세계 10위. 중학 진학율도 세계 10위다. 교육열은 미국보다 높다. 자동차 보유율은 세계 20위. 그러나 남녀평등 척도는 130개국중 37위고, 여성권한 척도는 116개국중 90위다. 이같은 통계에 맞추기라도 하듯 지난 4.11 총선에서도 여성은 2명밖에 당선되지 못했다. 여성수상을 10명이나 배출한 영국은 그렇다 치고 우리보다 잘 산다고 할 수 없는 스칸디나비아국에서도 내각과 국회의원의 50%가 여성이라고 한다.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 "여성유권자가 50%인데 여성의원은 왜 2명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하고 묻자 "그건 여자가 여자를 안찍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왔다. 우리나라 기혼여성들은 남편에게 누구를 찍을까 묻는데 남자들이 여자를 뽑으라고 할 턱이 없어 그렇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년여성일수록 남존여비사상에 물들어 있어 여자는 어딘가 남자보다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탓에 그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였다. 그자리에 있던 한 여성은 "그러나 가재는 게편에 서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설사 여자후보가 남자후보만 못해도 여자들은 여자를 뽑아야 헌법에 명시된남녀평등권을 찾을 수 있을텐데 여자가 더 우수해도 남자를 뽑으니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불평등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남녀평등이라는 말만 나와도 많은 남성들이 거부감을 나타낸다. 성폭력사건이 생겨도 많은 남성들이 의레 여자가 원인제공을 했다는 식으로치부하려 든다. 그렇다면 힘이 센 남자가 약한 남자를 때린 경우에도 약한 남자가 맞을 짓을 한 것인가. 여성국회의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같은 일이 하루아침에 해결되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성의원이 많아져 여성의 권익보호에 앞장서면 상황은 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생각에 동조하는한 여성유권자의 수에 관계없이 여성의원은 늘어나기 힘들 것이다. 가재는 게편에 서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