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정훈

유태인 부모들의 이상은 아이가 태어나면 "자이나멘슈"로 키우는 것이라고한다. 여기서 마음이 건전하다는 것은 세계를 보다 잘 이해하고 배우는 학문을쌓은 인간을 가리킨다. 그래서 유태인의 가정에서는 오늘날도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라면 성서를 펴서 그 위에 꿀을 조금 떨어뜨리고 아이에게 입맞춤을 시키는 의식을 행한다. 배움이란 달콤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상징적인 행사다. 배움을 강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도 다를 것이 없지만 한국인에게는 유태인의 성서같은 절대적 교육지침서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굳이 그것과 흡사한 역할을 했던 책을 들라면 유교사회였던 조선왕조초부터선비의 필독서였던 "소학"을 꼽을수 있을 뿐이다. 송나라의 주자가 엮었다는 "소학"은 8세내외의 아동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기위해 만들어진 수신서로서 일상생활의 예의범절, 수양을 위한 격언, 충신 효자의 사적등이 수록돼 있다. 어린이의 몸가짐부터 인간의 기본도리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망라돼 있는학문의 기본서인 셈이다. 조선조의 대학자 김굉필은 평생동안 "소학"을 공부하며 "소학동자"로 자처했다. 그뒤 조광조 김안국 이황 이이등 수많은 명현들도 "소학"을 학문의 기본서로 믿고 공부했다. 특히 율곡은 "대학" "논어" "중용"의 4서에다 "소학"을 넣어 5서라고까지 불렀다. 이것만으로도 "소학"의 중요성은 증명되고도 남는다. 중종때 우리글로 번역한 "소학"이 나와 일반에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 그 내용은 가정의 교훈인 "정훈"이 되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예절교육교본 학문의 기본서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렇게 보면 "소학"처럼 한국인에게 큰 영향을 준 책도 없을성 싶다. 해마다 5월이면 아이들이 점점 더 나약해 지고 버릇이 없어지고 인간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어른들의 걱정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부모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어른들 자신의 반성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날로 경쟁이 치열해 짐에 따라 옛날에 비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렵고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국의 교육학자 니일의 말처럼 자기가 무가치하다고 느껴 아이에게"감사"를 요구하는 가장 못난 아버지나 애정결핍증에 걸려 "엄마가 좋으니"따위나 물오보는 가장 못난 어머니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해마다 맞는 "어린이날"이지만 올해는 부모들이 "소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정훈"이라고 찾아보면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