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2일자) 건설업계 입장정리 급하다

본격적인 개방경제 시대를 앞두고 국내 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한 움직임이빨라지고 있다. 경쟁력강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적지 않겠지만 가장 시급한 과제의 하나로행정규제완화를 꼽는데 별로 이의가 없다. 행정규제완화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 꾸준히 추진돼 왔지만 실적 건수만 많을뿐 핵심적인 문제는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다. 국가경쟁력강화 기획단이 최근 10개 경제부처 기획관리실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법령 및 제도의 투명성제고를 위한 회의"를 열고 법규를 고쳐규제완화가 피부에 와닿게 하자고 한 것도 이때문이다. 특히 건설 금융 통신등 외국의 개방압력이 심하거나 개방일정이 촉박한 산업들에 대한 규제완화는 해당산업 업체들 뿐만아니라 우리경제의 장래마저좌우한다고 할수 있다. 자의적이고 불합리한 규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만아니라 통상마찰의 빌미를 줄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1월부터 시장이 개방되는 건설업은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그런데도 대기업인 일반 건설업체와 중소기업인 전문건설업체 사이의 첨예한 이해대립 때문에 규제완화에 대한 찬반입장을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력강화를 위해서는 규제완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현실론과 부실시공 방지및 구조적인 비리척결을 위해서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팽팽히 맞서 있다. 그러나 사태를 냉정하게 살펴 보면 이 문제가 풀수 없는 진퇴양난의 수수께끼는 결코 아니다. 전문 건설업체는 물론 일반 건설업체도 외국의 대형 건설업체와 비교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 공정관리 감리 등의 기술수준에서 크게 뒤질뿐 아니라자금조달 능력이나 금융조건에서도 대단히 불리한 형편에 있다. 따라서 단순시공은 전문 건설업체들에 맡기고 일반 건설업체는 설계 감리 등의 기술향상에 힘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 건설업체마저도 외국 건설업체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게될 것이다. 한편 전문 건설업체들은 도급한도나 면허구분과 같은 보호장치 철폐를 반대하지만 건설시장이 개방된 뒤에는 이같은 규제들이 오히려 국내 업체에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법률적으로는 금지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다단계하도급의 단계를 축소하기 위해 십장들에 대한 하도급을 양성화하자는 제안도 받아들여야 한다. 부실시공 방지를 위한 규제강화도 결국 국내 건설업체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줄 것이기 때문에 꺼릴 이유가 없다고 본다. 한 예로 무면허업자가 면허를 빌려 부실공사를 남발하는 현실에서는 부실시공이나 부도발생으로 면허가 취소됐을 경우 해당 법인의 대표자에게도일정기간 건설업 참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건설업계는 규제완화에 대한 입장을 서둘러 정리하지 못할 경우 아무런 대책없이 시장개방과 적자생존의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절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결과는 도산사태와 대외국 하청업체로의 전락이 있을 뿐이다. 하루빨리 공생공영의 지혜를 모아야 할 순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