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C 대경쟁시대] (3) 삼성그룹 기조실장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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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은 요즘 조용하다. 뉴스메이커가 아니다. 아니 스스로 뉴스 만들기를 원치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왜일까. 그룹측은 "신경영의 성과를 다지는 시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튈 때가 아니라 내실을 다질 때"라는 얘기도 들린다. "신경영 2기"의 목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삼성이 움츠리고 있다고 보는 것은 오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알수 있다. "삼성은 과연 삼성"이라는 생각 마저 든다. 과거를 반성하는 것이나 현재를 살아가는 게 그렇다. 21세기를 준비하는 것도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다. 삼성답다. "발은 현재를 딛되, 눈은 언제나 미래로 향한다"는 삼성. 그 현재와 미래가 궁금하다. 20만 삼성가족의 ''조타수''역할을 하는 현명관그룹비서실장을 만나봐도그 궁금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그것도 역시 삼성답다. ===================================================================== [만난사람 = 유화선 -삼성은 21세기 기업사회가 어떤 모습을 그릴 걸로 봅니까. 현명관실장 = 글쎄요. 그거야 알 수가 있나요. 다만 몇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지요. 우선 멀티미디어나 정보화사회가 만개할거고....최근들어 비약적 커질 테고요. 또 레스( less )현상이 일반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점포 없는( storeless ) 유통, 중간상 없는( dealerless ) 거래, 사무실 없는( officeless ) 근무환경 같은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 경영으로 가는 길은 어느 쪽이어야 합니까. 현실장 = 시스템 경영쪽이지요. 시스템 경쟁력이 떨어져서는 "대경쟁"시대를 헤쳐나갈 수 없을겁니다. -삼성의 경우는 어떤 시스템을 갖고 경쟁에 임할 생각입니까. 현실장 = 무엇보다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합니다. 스피드경영이 가능하도록 말입니다. 스피드경영에는 "분할" "분권" "분산"이 아무래도 효율적이니까요. -삼성식 중앙집권적 시스템을 해체하겠다는 뜻입니까. 현실장 = 꼭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분산과 집중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깡그리 부정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또 그게 바람직한 일도 아니고요. 과거는 곧 미래 변화의 "시그널"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삼성은 분산이 필요한 사업은 철저히 현장중심으로 다운사이징하되 경영자원을 집중해야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은 오히려 더 집중시킬 겁니다. 이렇게 되면 과거의 중앙집권식 경영시스템은 자연히 창조적 파괴과정을 거치리라 봅니다. -삼성은 신경영을 통해 이미 상당부분 창조적 파괴를 했지 않습니까. 현실장 = 사람과 조직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경영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완전 성공이라기 보다는 성공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독일의 륀박사는 조직의 변화를 녹이고, 바꾸고, 다시 얼리는 단계로 설명했습니다만 삼성의 조직은 지금 "바뀌는 단계"입니다. 완전히 바뀌면 21세기형으로 얼려지겠지요. -조직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뭘 하느냐도 큰 과제 아닙니까. 현실장 = 그건 올 초 6대과제로 제시한 삼성의 경영모토에 잘 나타나 있지요. 상생경영, 정보경영, 지식창조형경영, 다국적경영, 시나리오경영,복합경영이 그것입니다. 이들 6대 과제는 얼마전 미국 샌디에이고 사장단 전략세미나 때 채택한 3색경영을 통해 심화시켜 나갈 겁니다. 사회공헌(백색)과 환경경영(녹색) 기술.영업(청색) 분야로 말입니다. -샌디에이고 사장단세미나에서 이건희회장은 자동차 사업을 강조했던 모양인데 밖에서 보기에도 좀 어렵지 않겠느냐는 느낌이 듭니다만. 현실장 = 어렵다고 외면만 해선 안되는 사업도 있습니다. 자동차가 바로 그런 사업이지요. 자동차는 산업의 발전단계와 중국 등 인접국가와의 지정학적 위치,장기적인시장 전망 등을 고려한 사업입니다. 반도체 철강 조선 등의 사업처럼 우리나라 국민성에도 맞고요. 어쨌든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듦으로써 국내 자동차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거라고만 믿어주십시오. 경쟁은 그래서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러나 문제는 원가경쟁력이겠죠. 재무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5000억원이나 들어간 공장부지 비용외에 후발업체인지라 부품업체 라인업에도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하고, 그렇게 해서 제품이 나오면 또 비싼 로열티도 줘야하는 상황 아닙니까. 현실장 = 중단기적으로 보면 분명 그렇습니다. 그러나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최소한 10년 앞을 내다보고 시작한 것입니다. 자동차는 또 앞으로 전장화가 급속히 진전될 거라는 점에서 희망이 있지요. 그룹내 전자분야의 강점을 살리면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80년대 우리가 반도체 투자에 나설때 사람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삼성이 망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많았던 게 사실이었지요. -뭐 망할리야 없겠지만 자본 잠식상태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자본금을 계획대로 1조원까지 늘리더라도 말입니다. 현실장 = 그런 상태까지는 가지 않을 겁니다. 공장이 가동되고 나서 4-5년 정도만 지나면 적자는 면할 수 있을 걸로 봅니다. -자동차 말고도 삼성은 수종산업으로 멀티미디어 초박막액정표시장치 생명공학산업 등을 택했다지요. 현실장 = 수종이란 별게 아닙니다. 아무리 값을 비싸게 매겨도 어쩔 수 없이 삼성 것을 쓸 수밖에 없는,그런 상품생산 가능성이 큰 산업을 고른 것 뿐입니다. -그러나 삼성에게 생명공학은 아주 생소한 것 같은데요. 현실장 = 아시다시피 생명공학은 무척 광범위한 산업입니다. 연관 분야도 많고요. 그래서 그룹내 환경기술연구소 생명과학연구소 등에서 기초기술 연구와 사업화를 추진중입니다. -생명공학 관련회사를 설립할 계획은 없습니까. 현실장 = 아직은요. 그냥 화학관련회사가 맡으면 어떨까 생각중입니다. -좋은 묘목을 선택했더라도 심고 키우는데는 역시 돈이 필수겠지요. 이회장이 그룹내 버블이 심각하다고 말한 것도 돈 쓸곳이 많으니 좀 아끼자는 얘기로 해석하면 될까요. 현실장 = 그건 좀 빗나간 해석인데요. 이회장이 버블을 지적한 것은 돈 몇푼 아끼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인 버블을 말한 겁니다. 반도체에서 돈을 좀 벌었다고 "이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는 식의 자만감이 생겨나고 위기의식이 무뎌진걸 경계한 겁니다. 집안도 나라도 그렇지만 회사도 잘될 때 "망조"가 든다는 것 아닙니까. 로마를 보세요. 잘될 때 경쟁력을 정말 한단계 높여 놓지 않으면 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삼성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현실장 = 정말 그렇습니다. 인건비나 금융비용 물류비용 같은 게 어디 개별기업 혼자 잘한다고 바뀌겠습니까. 전반적인 기업환경이 개선되고 사회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야 하는 거지요. 삼성이 사회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빼 놓을 수 없겠죠. 삼성이 구상중인 추가 지원책은 없습니까. 현실장 = 협력업체들의 자동화율을 대폭 끌어 올렸으면 합니다. 삼성전자 가전부문을 보면 협력업체 자동화율이 현재 50% 미만입니다. 삼성은 3년내로 이를 70-80%까지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자동화가 잘돼야 제품이 균질화됩니다. 자동화 장비를 담보로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주면 좋을 텐데....또 중소기업 자신도 자생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가진게 없으니 정부나 대기업이 도와줘야 한다"는 식으로 손만 벌려서는 백년하청입니다. 어쨌든 삼성은 중소기업이 자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분가그룹도 좀 도와주시지요. 제일제당의 경우 삼성계열사 주식문제로 법적인 분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던데요. 현실장 = 제일제당이 잘되면 삼성도 좋은 거지요. 제당이 갖고 있는 상장기업 주식이야 주식시장에서 팔면 되겠지만 문제는 비상장 기업 주식입니다. 비상장주식 가격에 대한 견해 차가 커서 문젠데....서로간에 협의해서 빠른 시일내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가까이서 보는 이건희회장은 어떤 분입니까.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만 꼽아주시죠. 현실장 = 다른 그룹 총수도 마찬가지겠지만 이회장도 멍에를 지고 사는 분입니다. 보람이나 명예 사명감 같은 게 없으면 견뎌내지 못할 겁니다. 특히 이회장은 한가지 일에 너무 몰두하고, 너무 집중하고, 너무 골똘하거든요. 밤잠도 안자고 며칠씩 그렇게 할 때도 있습니다. 큰 장점이죠. -단점도.... 현실장 = 그게 바로 단점도 될 수 있겠네요. 불규칙한 생활을 한다고 오해까지 받으니까요. -이회장이 최근 들어 골프도 많이 치고 말도 열심히 탄다면서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한 지가 한 3년 돼니까 뭔가 또 터뜨리기 위해 체력비축에 들어간 것 아니나는 게 항간의 소문입니다만. 현실장 = 그거야 회장말고 누가 알겠습니까. -삼성사람들은 일에 중독된 사람들이라고들 합니다. 실장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현실장 = 중독됐다기 보다는 일을 사랑한다고 봐야겠죠. 일을 즐기거든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