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화교'] 경제활동 (북미/대양주) : 집단지역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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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 북미화교는 1960년대까지는 어느정도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노동자"라는 인상이 그것이다. 대부분이 광동성에서 온 농민출신이거나 그 자녀인 화교들은 캘리포니아 캐나다 서부지역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또 대륙횡단철도 건설 노동자로 입국해 점차 도시로 진출했다. 화교들은 차이나타운이라는 제한된 구역에서 세탁업등의 한정된 직업에 종사하면서 친족 동족 동업을 매개로 유대관계를 강화했다. 미주화교의 상당수는 "교령"이라는 지도자및 "당"이라는 갱집단에 의해 지배를 받아 왔다. 그러나 북미화교의 현재 상황은 이러한 이미지와는 크게 다르다. 북미의 화교인구가 1961년 6만명에서 현재는 67만명으로 지난 30년동안 8~10배가 늘었다. 현재 화교의 대부분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시대를 알지 못하는 전후세대다. 70년이후의 "신이민"은 다양하다. 중국의 이민자유화정책에 의해 본토에서 유입된 농민.도시노동자 출신,소수의 유학생, 홍콩출신 이민, 대만계 투자사업가, 동남아 남미로부터 재이민해온 화교가 그들이다. 북미지역의 화교들은 교육수준과 자산 언어 문화적응력등 모든 면에서 서로 상이하며 이민동기도 단순한 경제적 기회의 추구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적 자유나 안전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 고국의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적극적인 자기실현의 희구등이 그들의 관심사이다. 화교사회의 문제점도 속출하고 있다. 그 하나는 내부적인 분할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화교사회는 홍콩 대만계와 대륙계간에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신이민자들간에도 현저한 신분격차및 적응능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점차 민족적 유대관계보다는 자본가와 노동자로서의 관계만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북미화교사회의 또다른 문제는 "유리천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교는 종종 모범적인 소수민족으로 불릴만큼 사회적 신분이 빠르게 중산층화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노골적인 차별은 없어졌다 할지라도 미묘한 형태의 차별과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유리천정"사회에 잘 적응해 추가적 신분상승을 도모하려는 소수민족 출신자가 "제도적 장애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에 직면하게 되는 현실을 의미한다. .호주 = 호주정부의 화교 이주자에 대한 태도는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중국인이 귀중한 노동력으로 여겨져 자본가들로부터 환영받았던 19세기 전반의 백호주의시대에서 화교의 뿌리가 시작된다. 화교들은 그후 저임금노동자로서 백인노동자들로부터 멸시받고 끝내는 배척당하는 백호주의시대를 거쳐 1960년대 이후 백호주의가 철폐되면서 기업가및 전문.기술노동자로서 연방 주및 기업에 의해 환영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최근 중국학생들의 호주 유입이 크게 늘고 있다. 70년대중반 호주의 이민제한제도가 철폐되자 동남아로부터 화교유학생및 이주자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와 함께 화교의 인기있는 이민대상국이 바로 호주이다. 중국본토 출신의 호주유학생은 8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해 89년6월 천안문사태때까지 계속되었다. 왜 호주로 화교들이 몰릴까. 첫째 호주는 선진국이고 고수준의 직업자격 전문기술을 취득할수 있다. 보다 나은 취업기회도 주어진다. 둘째 지리적으로 가깝기때문에 비용이 저렴하고 고국.출신지역과의 왕래도간편하다. 셋째 백호주의가 철폐되고 다문화의 정책이 실시돼 이문화와 이언어에도 관용적이다. 넷째 호주정부가 70년대 후반부터 비차별적인 이민제도를 실시하고 유학생및 이민 난민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다섯째 호주정부가 아시아지역과의 협조를 강화하고 유학생을 적극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화교들은 여전히 호주보다 미국이나 캐나다를 선호한다. 호주의 경제력이 미국에 비교될수 없는데다 캐나다는 미국에 인접해 있기때문이다.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중국마피아가 시드니에 진출하려 했다가 도시규모가 작고 호주경제가 정체돼 있다는 이유로 단념했다는 얘기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호주의 화교들도 구중국인(1950년 이전)과 신중국인(최근 유학생)으로 나눠진다. 구중국인은 거리에서 레스토랑 세탁소등의 특정직종에 종사하며 외부사회와의 접촉을 피하고 인종차별의 풍토속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반면 신중국인은 호주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동시에 전문.기술직, 경영.관리직등 전문직종에 종사하며 차이나타운을 떠나 교외에 거주하고 있다. 화교공동체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정부원조가 필요할땐 수시로 요구하고 있다. 아직 잔존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면서 다문화주의 정책을적극 지지한다. .기타지역 = 구소련과 동구지역엔 현재 상당수의 신화교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화교는 보따리장사와 개인사업가 밀항자등으로 이뤄져 있다. 개인사업을 하는 화교는 동구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구하고 있고 밀항자는 미국 서구제국으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로 동구를 선호한다. 중앙아시아제국에서도 중국인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개방정책추진과 러시아의 변화등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중앙러시아로 이동하고 있고 이중 일부는 화교로 정착하는 추세이다. 중앙아시아 화교는 주로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우즈베키스탄등 3개국에집중돼 있다. 이들 3개국에 거주하는 화교는 14만8,000명에 달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도 화교들이 몰리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국가에 속하지만 화교는 이 나라를 경유해 서구로 이주를 추진하는게 보통이다. 오스트리아중국인총회는 구주 전역의 화교사회를 대표할만큼 중요한 위치를차지하고 있다. 화교는 중남미에도 있다. 2차세계대전 중국혁명시에 상해등 중국 각지에서 상인 지식인 기타 직업인들이 전란을 피해 중남미로 이동해 왔다. 최근 남미국가들이 홍콩 대만등의 대규모 자본을 겨냥해 이민우대정책을 실시한 것도 화교의 유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남미국가들은 일정액 이상의 자본을 가진 중국인의 이민을 크게 환영하고 있다. 파라과이 브라질등의 화교 대다수는 기회가 오면 미국이나 캐나다로 재이주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