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C 대경쟁시대] (4) 대우그룹 박용근 실장

박용근사장(60)은 비서실장으로는 "새내기"다. 그가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살림을 맡은 것은 작년 12월. 하지만 벌써 그 역할에 이골이 났다. "6공 비자금사건"이라는 엄청난 홍역을 치르면서 단련이 됐기 때문일게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그가 터득한 비서실장의 역할은 말 그대로 "내조자". 밖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가장(회장)을 대신해 가족(계열사)의 동정을 챙겨야 하고 때로는 가장의 인간적 고뇌도 들어주어야 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박실장이 이런 역할을 대과없이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열린 귀"를 가진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야기든 끝까지 들어주고 말허리를 끊는 법이 없다"는 것. 그는 또 대우에서 몇안되는 "혼네(본음:속마음)"를 읽을 줄 아는 "일본통"이기도 하다. 박실장의 이력서 첫줄은 동화통신 기자로 시작된다. 60년대 후반에는 주일특파원으로 필명을 날렸고 이때 일본에 출장온 김우중회장과의 만남이 인연이 돼 79년 대우가족의 일원이 됐다고 한다. 대우에서의 첫 직책은 대우개발 상무. 이후 (주)대우 상무와 대우조선 전무를 거쳐 87년 도쿄 지사장으로 부임했고 지난해 비서실장으로 금의환향하기까지 통산 10년을 일본에서 근무했다. 도쿄 지사장 시절에는 까탈스럽게 구는 혼다와 스즈키를 구워삶아 대우자동차와의 기술제휴를 성사시켰다. 또 (주)대우의 대일수출을 3위로 끌어올린 것도 박실장의 공적이다. 이런 박실장은 여느 그룹 비서실장에 비해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2배로 바쁜 사람이다. 오너회장(김회장)과 총괄회장(윤영석회장) 두 사람을 보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사장은 요즘 매일 새벽 5시면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한때 말 술도 마다않던 주량도 줄여나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