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공동개최] 대이은 드라마 .. 정주영-몽준회장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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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1년 9월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되던 날.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쎄울 코리아"라는 발표와 함께 한국의 올림픽유치단이 환호성을 터뜨리는 낯익은 사진에서는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던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함박 웃는 모습을찾아 볼수 있다. 96년 5월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똑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정명예회장의 6번째 아들인 정몽준 대한축구협회회장이 그 주인공. 정몽준회장은 지난 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축구계에 발을 들여놓은후불과 3년만에 한국을 200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올려놓은데 결정적인 역할을했다. 15년이란 시차는 있지만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올림픽과 월드컵유치를 위해이역만리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한편의 숨가쁜 드라마의 주역을 맡았던 것은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당시 정주영 올림픽유치 민간위원회 위원장은 일본 나고야와의 표대결에서 "82명의 IOC위원 가운데 잘해야 3, 4표 정도 얻을 것 같다"는 비관적인 분위기속에서도 "모든 일은 사람이 계획할 탓"이라며 특유의 추진력으로 밤을 새워가며 IOC위원들에게 꽃다발 선물을 돌리는 득표전을 펼쳐 대역전극을 이끌어냈다. 92년 대선이후 현대그룹과 정부와의 관계가 불편할때 정몽준회장은 축구를통해 문민정부와 화해를 모색할 수있는 기회를 엿보는 그룹의 창구역할을 해 왔으며 그때부터 월드컵유치를 위해 끈질긴 집념을 보였다. 아버지의 성격과 기질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는 평을 듣는 정회장은 93년 축구협회장을 맡은후 곧바로 월드컵 유치의사를 밝혔다. 이때도 국내외 여론은 그의 저돌적인 밀어붙이기가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며 패할 것이라고 대부분 생각했다. 이에 아랑곳않고 정회장은 FIFA집행위원을 치밀하게 공략, FIFA부회장으로 당선돼 국제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1년중 절반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FIFA집행위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온 끈질긴 정회장의 집념은 아버지의 올림픽유치 기적에 이어 또한번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월드컵을 유치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