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뷰캐넌 <미 조지메이슨대 교수>-손병두 <부원장>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헌법경제학의 창시자인 제임스 뷰캐넌 미국 조지 메이슨대 교수가 한국경제연구원의 자유주의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뷰캐넌교수는 방한기간중 손병두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과 가진 인터뷰에서"한국의 번영은 지속적인 법과 제도정비와 근로윤리의 발전에 달려 있다"고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은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등 시장왜곡을초래할수 있다"며 "정부는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될수 있도록 제도적 틀과골격(헌법적 규범)을 만드는데 전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뷰캐넌교수와 손부원장의 대담을 본지가 단독 게재한다. >======================================================================= 손부원장 =뷰캐넌교수하면 흔히 친시장경제운동의 선구자로 알고 있습니다. 몇해전에 발간한 자서전을 보면 젊은시절 한때 "헌신적인 사회주의자"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는데. 뷰캐넌교수 =매우 적절한 지적입니다. 내가 일관되게 시장경제를 지지해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세대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이 대공황과 2차대전을 겪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였다고나 할까요. 때문에 사회주의자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도 정부에 대해서는 결코 우호적인 태도와 생각을 가졌던 적은 없습니다. 손부원장 =젊은시절 사회주의자에서 시장경제주의자로 변신하면서 겪은경험은 해방과 전쟁, 그리고 고도 경제성장기를 살아온 우리세대가 겪어온 것과 너무 비슷합니다. 본인은 기업세계에서 돈을 버는 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됐습니다. 사고를 바꾸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뷰캐넌교수 =시카고대학에서 스승인 프랭크 나이트교수를 만나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부터입니다. 단 6주일의 강의를 통해 나는 철저한 시장경제의 신봉자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손부원장이 현장 체험을 통해서 시장주의자로 변신했다면 나는 훌륭한 스승과의 만남을 계기로 변신한 셈이죠. 지금와서 회고해 보면 청년시절 사회주의에 우호적 입장을 가졌던 것은 시장경제가 어떻게 움직여 가는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지식이 없었기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손부원장 =내 경험으로 볼때 시장경제원리가 복잡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별하게 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자세만으로도 시장경제를 상당히 이해하고 있다고 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합법적인 규칙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좇아 행동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교환을 하는 가운데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요. 뷰캐넌교수 =시장경제원리를 잘 지적하고 있군요. 손박사가 비즈니스맨으로 체득한 그같은 원칙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가 "자연적 자유"라는 말로도 표현했지만 그냥 평범한 사람들로하여금 자신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게 내버려 두라고 하면 아마도 혼란을 걱정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을 것입니다. 손부원장 =아시다시피 한국인들은 지난 30여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한국인들은 시장경제와의 만남을 통해서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양한 사회문제들, 이를테면 소득분배의 불균형 현상, 환경오염,소외현상 등의 문제를 갖고 시장경제를 비판하는 사람이 늘고 있거든요. 나는 이를 반자본주의 심리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유독 한국에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서구역사에서도 문제가 된 적이 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뷰캐넌교수 =매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결코 한국인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나라마다 역사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죠. 역사를 되돌아보면 기업가나 상인들이 따뜻하게 환대를 받았던 적은 흔치 않습니다. 미국에서조차 상인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반자본주의 심리는 그 대부분이 시장에 대한 무지, 앞서가는 자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에서 나오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카를 마르크스는 사람들의 심성과 시장경제의 약점을 접목시킨 점에서 아주 천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손박사도 알다시피 무지는 책을 읽어서 해결되기도 하지만 몸소 체험함으로써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회주의 몰락과 같은 직접적 체험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반자본주의 심리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손부원장 =반자본주의 심리의 뿌리를 무지와 질투에서 찾는 점에 동의합니다. 이같은 무지는 자연스럽게 제3의 현명한 존재를 필요로 하게 마련이고요. 중상주의나 사회주의같은 이념이 나오고,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문제해결을 정부에 요구하고 문제의 발생 원인을 정부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뷰캐넌교수 =이런 불평들은 결국 정부가 국가를 위해 이것 저것을 다 해야 한다는 정부개입 불가피론으로 확대되기도 합니다. 중상주의나 사회주의가 바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사상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무시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손부원장 =한국경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이 대단히 심한 편입니다. 특히 경제성장기를 통해서 정치가나 관료들은 시장경제에 철저히 개입해야한다는 "미시조정정책"(특정한 결과를 얻기위해 다양하고 세밀한 경제정책을사용하는 것을 말함)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지금도 많은 정치가나 관료들은 정부가 철저한 시장개입을 통해 한국경제를성공적으로 이끌게 됐다고 확신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물론 기업세계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불완전하지만 정부가 제공했던 재산권이나 계약을 존중한 법과 제도에 큰 의미를 두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역동적인 기업가들의 헌신적 노력이 중요한 역할을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부에 의한 과도한 시장개입은 기업경영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보는데. 뷰캐넌교수 =동감입니다.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은 필연적으로 "정부실패"라는 결과를 낳을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내가 공공선택이론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장을 열면서 절감한 것입니다. 정부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저임금제 가격규제 그리고 환율조작 등의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면 할수록 시장에서 왜곡현상은 더욱 심하게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사람들 사이에 교환이나 거래가 자유스럽게 일어날수 있는 법적 제도적 틀이나 골격을 만드는 일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시장의 작동에 대해서는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기업들에 맡겨 두는 것이 옳다는 게 나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손부원장 =물론입니다. 교수님이 창안한 헌법경제학의 기본적 아이디어도 시장경제가 보다 원활히작동할 수 있는 제도의 선택을 다루는 경제학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번영을 위해 헌법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교수님의 지론도 시장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제도정비로 이해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인은 뉴질랜드의 개혁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박사의 주장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으로 개혁의 선도자가 되어야 할 정치가나 관료들이 개혁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개혁을 시도한다고 하면서 목적과는 아주 동떨어진 제도개혁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같은 문제가 발생할까요. 뷰캐넌교수 =뉴질랜드는 지난 80년대말 로저 더글러스 재무장관이 개혁을 추진할 당시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친사회주의적 정책을 사용한 결과 높은 실업률과 낮은 성장률, 그리고 과도한 복지비용으로 국민들이 진절머리를 낼 정도였죠. 상황이 상당히 악화돼 있었기 때문에 더글러스가 추진한 "헌법적 개혁"(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법적 제도적 개혁을 말함)이 손쉽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상황은 지금까지 상당히 좋았고 현재도 그렇게 나쁜 상태는 아닙니다. 이로 인해 장기적 관점에서 번영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헌법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본래 미리미리 준비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차 강조해 왔지만 시장경제를 위한 헌법적 개혁은 글로벌라이제이션시대와 정보기술혁명시대에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손부원장 =한국은 지금 두 전직대통령 구속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일반국민이나 정치가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부패된 기업인들을 나무랍니다. 정부는 정경유착을 근절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부정방지 대책법이란 것도 구상하고 있고요. 부패를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뷰캐넌교수 =집중된 권한의 분권화만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봅니다. 희소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선행"을 기대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전직대통령의 부패사건도 너무나 많은 권한이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손부원장 =박사의 학문세계를 보면 시장경제는 법과 제도를 한 축으로 하면서도 윤리와 도덕을 다른 한축으로 매우 중시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뷰캐넌교수 =윤리와 도덕은 일종의 자본입니다. 한번 없애버리고 나면 쉽게 보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번영을 원하는 사회는 항상 윤리와 도덕이라는 "도덕적 자본"의 지속적 축적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물질적 풍요가 가져올 근로윤리의 퇴락을 경계해야 합니다. 더욱 열심히 일하는 윤리를 가진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가 경제적으로 더욱 풍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동양의 유교적 덕목들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손부원장 =한국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뷰캐넌교수 =유럽 선진국의 생산성은 60년대에 최고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복지국가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과 같은 신흥국가는 60년대의 미국이나 유럽과 흡사합니다. 만일 한국이 서구형의 지나친 복지정책을 추구할 경우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유럽국가들이 과도한 복지정책을 추진하다가 경제가 활력을 잃고 성장률이떨어진 한편으로 계층간의 정치적 갈등이 빚어졌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복지국가 모형의 선택에서 대단히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손부원장 =장시간동안 유익한 이야기를 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