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투자신탁] (5) 펀드 매니저 <2>

"펀드매니저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 넣는 방법이 있다. 증권사 법인영업부를 시키면 된다" 한때 증권가에는 이같은 유머아닌 유머가 오고 갔다. 펀드매니저들의 온갖 주문에 시달린 증권사 직원의 비애가 담긴 말이다. 투자신탁회사의 펀드매니저과 증권사의 법인영업부 직원은 먹이사슬관계다. 증권사 직원들은 매매약정을 올리기 위해 펀드매니저에게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갖가지 편의를 제공한다. 펀드매니저들은 약정을 무기로 증권사의 상전으로 군림한다. 그래서 증권사에서는 투신사 직원을 "귀족"이라고 부른다. "명절때면 펀드매니저의 집에는 증권사 직원들의 발길이 잦다. 갈비한짝이라도 사서 들어가야 매매약정을 따낼수 있기 때문이다"(K증권 N대리) 명절때만이 아니다. 휴가철에는 이미 동이난 콘도를 예약해 준다. 재미있는 연극이나 영화티켓은 물론 읽을만한 책들까지 수시로 펀드매니저들에게 상납한다. 약정을 올리는것이 최대의 업무인 법인영업부직원으로선 업무추진비가 모자라 개인적인 돈까지 써가며 펀드매니저의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증권사법인영업 담당임원들이 대리급인 펀드매니저들을 찾아가 깎듯하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할 정도다. 그러니 증권사로선 펀드매니저가 무소불위의 존재에 가까운 "귀족"일수밖에없다. 물론 이같은 먹이사슬 관계는 증권사들의 극심한 약정경쟁에서 비롯된것이다. 서울소재 투자신탁은 3개사이고 증권사는 무려 33개사이다. 그러니 펀드매니저들은 33명의 증권사법인영업부를 상대하게 된다. 따라서 이왕이면 자신을 잘 "모시는" 증권사에게 약정을 주게 된다. "좋은 투자정보를 제공해 펀드의 운용수익률을 높이는데 기여한 증권사에게매매약정을 주는건 당연하다. 자체적으로 증권사들이 운용성과에 기여한 정도를 수치화해 점수대로 약정을 준다"(H투신 모대리) 실제로 한국투신의 경우 최근 역정보를 흘려 펀드운용수익률을 깎아내리게 한 소형S증권에 대해 매매약정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증권사가 잘하면 약정을 주고 못하면 약정을 끊어버린다는 예를 그대로 보여 준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약정은 펀드매니저에게 최대의 무기인 셈이다. 심지어는 투신사가 보유한 "썩은물량"을 증권사가 억지로 떠안는 경우도 있다. 펀드매니저가 사들인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 거래량도 줄어든다. 손해를 보고라도 팔려고 하지만 물량이 워낙 많아 팔리지 않을 때가 많다. 이같은 손절매물량은 대개 증권사들이 떠안는다. 투신사들이 보유한 주식을 증권사들의 상품주식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모증권 P과장은 "가뜩이나 리스크관리를 위해 상품주식을 줄여나가는 증권사로서는 달갑지 않지만 약정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투신사의 증권사에 대한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초부터 투신사들이 투자자문업을 할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됐다. 그러자 투신사들은 지난 3월부터 운용인력의 일부를 따로 떼내 투자자문담당부서를 만들었다. 투자자문을 담당하게된 직원들은 증권사를 상대로 자문계약을 강요했고 증권사들은 할수없이 자문계약을 했다. "기업분석 투자정보 주식운용까지 하고 있는 증권사가 자문계약을 맺을 이유는 사실상 없다. 자문계약을 강요당한 것이다"는게 증권사들의 불만이다. 투신사로서도 할말은 있다. 국민투신의 한관계자는 "3투신이 증권사에 매매약정을 통해 내는 연간수수료만해도 무려 1,500억원에 달한다. 약300억원의 자문계약수수료를 가지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문계약과 손절매물량의 매수, 온갖 편의제공 등이 증권사가 약정고를 올리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한 것이지 강요된 것은 아니라는게 투신사의 설명이다. 펀드매니저들도 "증권사가 그렇게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무의식속에는 "증권사라도 없으면 어디가서 대접을받겠느냐"는 생각이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