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짝사랑 .. 양봉진 <국제부장>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소박맞고 돌아온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애처로운 심정으로 내뱉는 말이다. 당사자들은 부인하려들지 모르지만 불행하게도 한국과 중국의 중형항공기개발계획은 파경을 맞은 혼인에 불과하다는게 일반의 평가다. 정부가 집안살림 제대로 한번 키워 보겠다고 순수한 동기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기울인 노력 그 자체를 탓할 사람은 없다. 중국을 상대로 잡은 긋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다만 상대방은 염두에도 두고 있지않은 혼사를 놓고 결혼이 꼭 그리고 곧 성사될 것처럼 농데방네 떠들고 다니다 몸 상하고 체면까지 땅에 떨어진것이나 다름없게 된 이번 결과는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수치로 남게될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만 하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혼사에 뜻이 없어으면 단호히 거절하고 말 것이지 혼인약정서에 도장까지 찍어 놓고 이제와서 이를 파기하고 남에게 상처를 안겨준중국이야말로 큰 나라사람들답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중형기에 관한한 중국은 누구나 탐내는 배필임에 틀림없다. 우선 땅덩어리가 크다보니 항공기에 대한 잠재수요가 많으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또 인공위성과 핵실험을 해대는 나라니까 기술이 어느 수준이겠는가도 유추할수 있다. 현금이 없어 보이는 것이 약간 흠이지만 그것도 실상을 뜯어보면 돈주머니를 들고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런 마당에 중국이 우리가 하자는대로 호락호락 따라오리라 여겼다면 그것은 무모한 순진함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잠재수요 기술 자금동원력등 3대요소를 모두 쥐고 있는 중국이 뭐가 아쉬워서 사업의 핵심이랄 수 있는 조립공장을 한국땅에 세우도록 양보하겠는가. 당초 중국이 이번 혼사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여러경로를 통해 확인가능한 일이었다. 중형기를 포함, 고화질TV개발, 자동차부품협력 그리고 차세대교환기개발등 4대 우선협력과제에 관한 양국정상간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관련기사들이 국내신문지상에 대서특필되고 난때인 94년여름, 필자는 중국 상해에 있는 상해항공업집단공사를 방문하게 됐다. 때맞춰 이 회사 오작권부총리(우리나라의 부사장급)와 왕근수회사판공실부주임과 대화를 갖게 됐다. 상대방이 항공업계 최고경영자들이니만큼 한중중형기개발계획에 대한 반응을 물어보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그런 것이 있었느냐"고 되물어 왔을뿐 아니라 "이미 우리는 중형항공기와 관련, 미보잉사에 납품까지하고 있는데 무슨 얘기 냐"는 투였다. 순간 "중형항공기 사업이 공회전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스쳐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여러가지 잡음이 들리더니 최근 중국은 우리와 사전협의도 없이 싱가포르의 화교계에 지분을 할애했고 우리는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됨과 동시에 중형기는 영원히 물건너 가버렸다. 입맛이 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죽은 자식 붙들고 앉아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중국과 얘기해 놓은 나머지 3개 우선협력사업에서만은 당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번 결과가 다분히 우리측의 무모함과 판단착오에 기인한 실패작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이 전적으로 중국측에 있는 것처럼 강변하는 사고와자세를 정부가 계속 고집하는 한 똑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게 이일을 담당한 사람들의 이구동성이다. 특히 4개우선협력사업이 대통령까지 끼어든 정치외교적 사안이다 보니 업계로서는 실무적 접근에 많은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입장에서는 다소 명분이나 체면에 손상이 가더라도 실리적인 접근을 해보고 싶어도 현안으로 걸려 있는 사업들이 정부차원의 틀에 묶여 있어 운신의 폭이 좁다는 지적이다. 중형기사업의 뼈아픈 실패를 교훈삼아 정부는 이제 뒤로 빠지고 업계가 나서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꿔 줘야 할 때다. 또다시 상대방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치 못하고 우리쪽 입장에서만 현상을해석하고 접근하려 든다면 또한번의 수치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게 업계의평가다. 그렇다. 소박은 한번으로 족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