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5일자) 한-일 신시대 여는 각오
입력
수정
6.25발발 46주를 맞는 오늘에 한-일 관계를 운위함은 굳이 제주 정상회담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수천년 양국 역사에서 좋든 싫든 서로를 완전히 떼어 놓고는 생각하기 힘든 이웃인 점에서 6.25의 감회 역시 깊으려니와 이는 역사가 있는 한 피할수 없는 숙명적 만남이기도 하다. 그런 시각에서 우리는 제주회담이 알맹이 현안들을 배제, "6년 뒤의 월드컵"에 초점을 맞춘 처사에 대한 비판에 신중하고자 한다. 오히려 월드컵 공동개최라는 흔치 않은 기회을 미래의 공동선에 활용함으로써 실제로 미래에 과거를 포괄해 해결하는 대승적 사고야 말로 21세기 주역을 자임하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취할 만한 자세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실로 해방 51년, 수교 31년의 긴 세월, 과거를 둘러싸고 양국간에 오간은수의 말잔치는 요란했다. 그러나 프랑스-독일간의 과거청산-새관계 구축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한-일 관계는 답보했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에서 부터 달라져야 한다. 가령 전후 끝없이 되풀이한 일본 정객들의 망언들로 인해 일시 힘겹게 쌓은 공든 탑이 얼마나 자주 무너졌는지 성토하는 일조차 삼가려 한다. 이변 하시모토 일본 총리의 위안부-창씨개명에 대한 사과발언이 흡족하냐에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여러 잘못에 대한 사과의 예시로 넓게 받아 들이려 한다. 다만 귀국후 그 발언의 진의를 훼손할 수정발언이나 다른 인사들의 한계넘는 비난이 들려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쌍무적이다. 어느쪽이건 과거시비로 되돌아 간다면 이는 양 정상이 모처럼 깔아놓은 미래지향적 협력무드를 단번에 뒤엎는 망동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주장이 오직 월드컵협력 한가지를 위해 그 많은 현안들을 아주 묻어버리자는 뜻으로 오도돼선 안된다. 실제로 2002년 행사를 양국 공동이익에 부응토록 준비하는 과제 자체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그런 혼동은 있을수 없다. 이제 구체적인 과제는 회담에서 약속된 "양국간 월드컵 연락체제"를 제대로 가동하는 일이다. 경기운영을 차질없이 분장하는 기술상 협력도 중요하나 이는 보다 높은 차원의 협력이 선행 내지 동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돌아보면 그동안 한-일간의 과거문제 접근은 정면돌파에서 문제가 따랐다고도 본다.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감정은 "잘못은 너, 잘한 것은 나"를 본성으로 한다. 그러나 합심협력 없이 서로 손해를 보는 이인삼각 경기를 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월드컵 공동개최야 말로 선의의 경쟁을 넘어 배타적 이익을 추구할 때 공동손해를 보는 게임이다. 유럽의 불-독은 성과를 과시하고 있는데 동아시아의 한-일은 이리 죽을 쑨대서야 말이 되는가. 이제까지의 잘잘못은 들추지 말고 앞을 향해 협력하자. 그래야 비단 축구 스포츠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동목표가 현실로 우리들 앞에 다가 온다. 아무리 목전의 인기에 죽고 사는 양국의 어떤 정치인일지라도 이젠 제발 언동을 삼가서 양국간 모처럼의 미래지향 기운에 재를 뿌리지 말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