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 현대 제철소건립 '초읽기' 돌입

"현대의 발표가 임박했다" 현대그룹이 조만간 일관제철소 건립계획을 공식 발표할 것이란 얘기가 업계에 파다하다. 그래서 이 문제가 또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에 대한 사업계획 제출시기와 관련해선 "7월설" "8월설"등이 분분하다. 이처럼 현대제철소 문제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월드컵유치와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발표 때문. 정몽준 현대중공업고문이 발로 뛰어 월드컵을 유치했고 PCS사업자 선정에서현대가 탈락하면서 현대의 제철소 추진 분위기가 무르 익었다는게 업계의 평가다. 국민의 숙원이던 월드컵 유치에 공을 세운 현대가 신규통신사업에서 탈락함에 따라 정부가 뭔가 "보상"을 해주지 않겠느냐는 말이 많다. 그 "보상"은 일관제철소 허용일 것이란게 정설처럼 돼있다. 실제로 현대그룹 고위관계자는 "일관제철소의 공식 추진은 업계 국민 정부가 모두 "이젠 현대가 해야 하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고조됐을때"라고 공언해 왔다. 바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현대는 "그 때"를 기다리며 철저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제철에 전담팀을 구성해 사업계획을 다듬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구문이다. 전담팀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적지않은 인력이 참여해 부지물색등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중이라고 업계 소식통들은 말한다. 물론 이 프로젝트의 총지휘 본부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로 전해진다. 종기실의 조정에 따라 현대경제사회연구원 그룹문화실등이 논리개발 홍보전파등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는 것.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은 월드컵 유치열기가 뜨겁던 지난달 두차례에 걸쳐 일관제철소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었다. 보고서의 골자는 앞으로 철강제품의 공급부족과 무역수지 적자확대가 예상된다는 것. 따라서 고로 방식의 일관제철소 추가건설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최근 재계의 관심이 "현대가 제철소를 할수 있을까"에서 "현대가 언제 발표해 제철사업을 추진할 것인가"로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이미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는 눈치다. 심지어 현대 제철소 건립에 적극 반대해온 통상산업부에서도 이런 분위기는감지된다. 통산부 관계자는 "올초 정몽구회장이 취임때 제철소 건립추진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부터 현대가 무슨일이 있어도 제철소를 지을 것이란 예상이지배적이지 않았느냐"고 까지 말했다. 또 통산부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민간기업이 자기 책임아래 제철소를 추진하겠다는데 정부가 무슨수로 말릴수 있겠느냐"며 그동안의 반대입장을 누그러뜨리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과연 현대가 이 뜨거운 감자를 언제 들고 나올 것이냐는 것이다. 분명한건 그 시기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최근의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 현대측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어서다. 이 때를 놓치면 언제 또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 익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이 현대를 재촉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의 제철소 건립 기본구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약 8조~10조원을 투자해 총 1,000만t 규모의 고로 3기정도를 짓겠다는 것이다. 부지는 당초 부산가덕도가 거론되다 요즘들어 서남해안 설이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젠 현대가 뚜껑을 여는 일만 남은 셈이다. 물론 현대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도 있고, 아예 제철소 건설 포기쪽으로 가닥을 잡을수도 있는 문제다. 일각에선 현대그룹 내에서도 일관제철소 건립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목소리가 많다는 말도 흘러 나오고 있다. 또 아예 일관제철소를 국내가 아닌 외국에 지을수도 있다. 땅값이나 인건비가 비싼 국내보다는 철광석도 나오고 땅값도 싼 인도 남미등지에 제철소를 지어 슬래브등 중간재를 들여오는 방안도 실제로 검토되고있다. 현대의 일관제철소 건립계획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는 말이다. 통산부의 공식 반대입장에 부딪쳐 공공연히 말한번 못꺼냈던 일관제철소 건립계획을 현대가 다시 들고 나올지 여부는 얼마 안있어 결판이 날 전망이다. 재계의 촉각은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8일자).